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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Nov 22. 2021

잉여인간, 잉여 값의 진실

서평, <잉여인간>, 손창섭, 민음사, 2005


잉여인간,     

잉여인간이라는 말은 결코 좋은 느낌은 아니다.

남아도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이라니. 인간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말이니 듣기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호모 데우스’, 폭발적 기술혁명으로 신의 경지에 이르렀고, ‘호모 헌드레드’, 아마도 100세가 넘도록 살게 될 거다. 기술혁명으로 신의 경지에 이르러 100세가 넘도록 늙지도 않고 산다는데 뭐가 걱정인가. 이렇게 획기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룬 마당에 우리는 일자리가 사라져 노동시장에서 내몰릴까 두려워진다.

누구라도 ‘잉여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전망 중에 임금노동에 기초한 노동체계가 붕괴할 거란 전망과 종국에는 복지체계마저 위협받고 붕괴될 위험에 대한 경고가 이어질 때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대안은 있겠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위로하며 과거에서 보게 된 현재의 모습에 인간적인 소박한 ‘대안’을 찾아본다.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에서.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은 1958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한국전쟁 이후, 극도의 혼돈과 불능의 상황을 상상해보라. 많은 사람들이 잉여인간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손창섭은 그들을 소설로 옮겨왔다. 러시아 문학에서도 잉여인간이 등장한다. 푸쉬킨의 『예프게니 오네긴』(1833)이나 이반 투르게네프의 『잉여인간의 일기』(1850)등의 작품이다. 19세기 러시아 사회와 관련해 등장하는 인물 유형이다, 그들은 주로 귀족이나 대학생 등으로 교육을 받고 사회적 이상과 비판의식이 강한데 비해 현실적으로는 행동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물이다.


우리 소설에서도 이상의 『날개』(1936)의 서술자 ‘나’가 그렇지 않은가. 일제강점기의 무기력한 지식인의 자폐적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독자들은 “그래, 날개를 달고 날아!”라고 외쳐주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손창섭의 소설에 많은 잉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잉여인간’ 뿐 아니라 ‘생활적’의 동주, ‘비 오는 날’의 동욱, ‘미해결의 장’의 지상과 문 선생 등도 잉여인간의 유형이다. 이러한 인물의 유형에 대해 평론가들은 손창섭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병자의 노래, 수인의 미학으로 표현한다. 이는 한국전쟁 후 한국사회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세 명의 동창생이 있다. 만기와 익준과 봉우가 그들이다.

만기는 이 소설의 중심축으로 헌신과 배려의 인물이다. 그는 치과 의사로 대가족을 부양한다. 처가 식구까지 합해 14명이다. 그는 병원 월세와 대가족 부양으로 늘 궁핍하다. 병원을 임대한 봉우 처는 재력가이며 그의 동창이기도 한 봉우의 아내이다. 그녀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하며 육체적 물질적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성적 유혹과 물질 공세를 퍼부으며 만기를 유혹한다. 그러나 만기는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는 인물이다. 그는 외모가 출중하고 내면의 기품까지 갖추어 완벽한 인물로 단점을 찾을 수 없다. 아내는 그에 대해 애정과 신뢰를 잃지 않고, 헌신적인 형부의 모습을 사랑하는 처제, 병원을 찾는 여자 환자들의 가슴도 설레게 하며, 간호사 인숙 역시 사회적 반려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사실 다소 비현실적으로 완벽한 인물이다. 게다가 전쟁 후의 혼란기임을 고려하면 그의 존재는 더욱 위태롭다. 현실적 상황이 그를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결함과 도덕성을 지킨다. 반면에 만기와 극적 대비를 이루는 두 인물이 있다.     

 

익준과 봉우다.

그들은 잉여인간의 삶을 사는 인물이다. 익준은 취직을 하려고 애를 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회에 적의만 가득하다. 할 일 없는 익준은 만기의 병원에 나와 신문을 보며 비분강개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가족의 생계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가장으로 ‘이상은 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의 아내는 생선장사를 해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고 그의 어린 아들은 뒤축이 닳아 걸을 수 없는 고무신을 손에 들고 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 아내가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주사라도 맞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일을 하러 떠나지만, 아이들의 고무신을 사서 가슴에 안고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내의 죽음이었다. 익준의 아내 장례를 치러낸 것도 만기다. 만기는 그토록 피해 다닌 봉우의 처에게 장례비용을 빌린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익준 아내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었기에 평소에 꺼리던 봉우의 아내에게라도 부탁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결국 익준은 현실의 부조리함에 분노하지만 타협점이나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자기 합리화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내를 떠나보내고 만다.   

   

봉우는 어떤가.

그에게 유일한 삶의 의지와 의미는 간호사 인숙을 졸졸 따라다니는 삶이다. 그뿐이다. 그는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잠을 자면서도 각성상태를 유지한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수면장애다. 그는 전쟁 때, 적의 치하에서 숨어 지내면서 공포와 불안의 신경증을 얻었고 전쟁은 끝났지만, 신경증을 치유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무기력의 늪에 빠진 인물이다.

그는 모든 일에 무표정과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전쟁 중에 부모 형제를 잃었고, 아내는 재력은 있지만 부도덕하다. 그의 삶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은 오로지 인숙을 따라다닐 때뿐이다. 인숙을 짝사랑하는 일만이 그의 삶의 전부이다. 그런 봉우에게 뭔가를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만기다. 익준의 아내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봉우의 아내에게 돈을 빌리러 갈 때 그가 아내를 설득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용돈을 줄여도 좋으니 장례비용을 빌려달라고 아내를 설득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만기는 두 친구를 무기력에서 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말은,

만기가 지키려 했던 삶의 가치일까?

전후의 황폐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만기의 일관된 삶의 가치 기준을 지켜나가는 ‘행동’에 있다. 그는 중학 동창들에게 언제든 휴식을 제공한다. 비난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가족의 생계를 떠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궁핍하지만 돈의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으며 자신을 지켜낸다. 자기가 믿는 가치를 지켜낸다. 그의 ‘다정함’이 여럿을 살렸다. 그가 지켜내려 노력한 ‘덕’이 주변에 영향을 미쳤다. 그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도 만기와 같은 인물은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 대가족을 부양하는 우직함, 잉여의 삶을 살게 된 친구를 보듬는 넉넉함, 인간적 도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유혹하려는 덫을 놓기 바쁜 봉우의 처에게마저 부탁을 주저하지 않는 용감함 등이 그가 가진 다정함의 현실적 모습이다. 결코 모른 척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덕, 그것이 이 시대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 성장의 이면에 소외되고 밀려난 존재들을 책임지는 것은 우리가 인간적이라 부르는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순간인 것이다. 이것이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잉여 값의 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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