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에세이 <이상한 나라의앨리스> B북플리오,2002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채널A 예능프로그램이 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언제나 아동의 입장에 선다. 미숙한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상황과 심리를 최대한 이해하려는 모습이다. 아이에 대한 설루션은 물론이고 부모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와 위로까지 보여줘 사람들을 울리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완벽하게 준비하고 부모가 되지는 않는다.
그들도 마음의 연약한 부분을 다치거나 반복되는 상처에 굳어지기도 한다. 부모도 아이처럼 부모로서 성장하는 아픔을 겪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그 사이, 수많은 혼란을 겪고, 이겨내고, 성장한다.
그 성장 속에 많은 스토리가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호기심 때문에 들어간 ‘토끼굴’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 때, 부모로서 산다는 것이 버거울 때, 가끔 앨리스가 되어보는 것이 어떠할지. 앨리스가 되어 호기심 충만한 모험을 즐기고 돌아오면 다시금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앨리스와 함께 떠나보자. 어른들은 모른다는 사차원 세계로.
앨리스는 토끼굴 속으로 떨어진다.
만약 토끼를 쫓지 않았다면, 따분하지만 안전했을 것이다.
앨리스가 토끼굴로 떨어진 것은 따분함과 호기심 사이, 둘의 무게를 견주다가 본능적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이리저리 재보고 선택하지는 않았을 테니.
아이에게 따분함은 견디기 힘든 ‘졸음’과 같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토끼를 쫓아갔으리라.
토끼굴 여행은 후회스러울 만큼 어려운 일이 반복된다.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그녀는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 묻는다.
“그런데 내가 누구죠?”
중요한 순간이다.
‘자아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이니.
정체성은 독자성이 있으면서 연속성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구별할 수 있는 ‘나의 것’이다.
‘나의 것’은 고정되어 있고 숨겨진 보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삶은 역동적이고 보다 나은 존재로 탈바꿈하려 한다.
앨리스가 토끼굴로 들어간 것 역시 존재의 탈바꿈을 시도한 것이다.
사춘기를 맞이한 청소년이 겪는 심리적 위기감이나 갱년기의 부모가 겪는 위기감이 모두 마찬가지로 존재의 탈바꿈을 시도하는 것이리라.
앨리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수시로 물으며 이상한 나라의 모험을 계속한다.
거인이 되어 흘린 눈물 웅덩이에 빠져 펑펑 운 것을 후회하더라도 말이다.
호기심을 선택한 ‘나’는 누구인가.
또다시 선택의 기회가 와도 ‘호기심’을 선택할 ‘나’, 앨리스다.
눈물바다에 빠져 짠물을 들이켜던 앨리스가 다시 커졌다.
앨리스가 두 번째 토끼를 만났을 때 토끼는 부채와 장갑을 찾고 있었다.
앨리스는 토끼를 도우려 장갑과 부채를 찾아다니다가 마법의 병을 발견하고 몸이 커지기 위해 조금 마셨다. 그런데 너무 많이 커져서 방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있을 때가 훨씬 더 즐거웠어. 그땐 몸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지도 않았고, 생쥐나 토끼의 심부름을 하지도 않았어. 토끼굴에 뛰어들지 말았어야 했어. 그렇지만, 으음, 이런 게 더 재미있는 인생이잖아!”
현실에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
방이 꽉 찰 정도로 몸이 자랐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런 게 더 재미있는 인생’이라며.
재미있는 인생은 앨리스에게 유연한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는 유추 능력을 준다.
그녀는 조약돌이 과자로 변한 것을 발견하고 ‘이 과자를 먹으면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도 몰라. 작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과자 하나를 꿀꺽 삼켰다.
바로 몸이 줄어들었다. 조약돌이 작은 과자로 변한 것처럼.
이제 문을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줄어들었고, 앨리스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은 계획이라 생각하며 뛰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호기심이 많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관하지 않으며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나’, 앨리스다.
“한쪽은 너를 크게 만들고, 다른 한쪽은 너를 작게 만들지.”
“뭐가 그럴까? 뭐의 한쪽과 다른 쪽이 그런다는 거지?”
앨리스는 혼자 생각하다 “버섯이 그렇다고.”라는 쇄기 벌레의 대꾸를 듣고 버섯을 골똘히 쳐다봤다. 앨리스는 버섯의 양쪽을 뜯어내 먹기 시작했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앨리스는 버섯을 들고 무작정 먹지 않았다. 쇄기 벌레가 말한 것처럼 한쪽과 다른 쪽을 번갈아가며 먹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앨리스는 몸이 커졌다 줄어졌다를 반복하는 사이 ‘신중함’을 배운 것이다.
이제 아름다운 정원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텔레파시로 몸을 변화시킨 ‘나’. 상대의 마음에 집중하는 앨리스다.
어느새 앨리스는 소통의 소중함을 터득한 것이다.
“여왕님이다! 여왕님이 납신다!”
하트 여왕은 모든 것을 제멋대로 결정한다.
여왕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고 수시로 “목을 베라”로 말한다.
“저 놈의 목을 베어라!”
“저 여자의 목을 베어라!”
그러나 여왕은 혼자 상상하는 것일 뿐 아무도 사형되지 않았다.
앨리스는 파이를 훔쳐 간 도둑을 찾는 재판에서 증인으로 불려 갔다.
앨리스는 아는 것이 없다고 증언했다. 아무것도.
그러자 여왕은 앨리스의 키를 들먹이며 법정을 떠나라고 한다.
앨리스는 정식 법률이 아니라고 따졌고, 여왕은 오래된 규칙이라고 우겼다.
선고를 먼저 내리고 평결은 나중에 하라는 여왕의 말에 엉터리라고 앨리스가 따지자 여왕은 말했다.
“저 아이의 목을 베어라!”
여기서 앨리스는 그들의 실체를 밝힌다.
“당신들은 카드에 불과하다고요.”
앨리스가 이 말을 할 때 앨리스의 몸은 최고로 커져 있었다. 카드들 모두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앨리스를 향해 쏟아졌다.
“일어나렴, 앨리스. 무슨 잠을 이렇게 오래 자니!”
꿈이었다.
여기까지, 앨리스의 성장기다.
앨리스는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용기를 배우고 타인을 존중하고 경청하며 신중함을 지니게 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정의롭게 행동하게 되었다.
소녀의 철학은 이렇게 자란다. 꿈꾸도록 두기만 한다면.
살면서 많은 순간 ‘이상한 나라’를 기웃거리게 된다. 이상한 나라에 발을 디딜 것인가 뺄 것이다. 어른이라고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듯 아이라고 그른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호기심이라는 유연한 근육을 유지하며 가볍게, 수시로 모험을 즐겨 봄이 어떠할지. 앨리스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