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방

<남신의주유동 박시봉 방>, 백석, 휴먼앤북스, 2011

by 아침놀


시인 백석은 일제 말기 만주에 있었다.

해방이 되자 신의주로 돌아온다. 시의 제목인 바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은 신의주의 남쪽 유동에 사는 박시봉네 집의 방이란 말이다. 이곳에 백석은 어렵게 임시 거처를 마련한다.

이 시는 백석이 남한에 사는 친구에게 보낸 시다. 당시(1947년)에는 남북한 편지 교류가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제목이 없어서 편지 겉봉에 적혀있던 주소가 제목이 된 것이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백석은 추운 날에 집 없이 떠돌다 어느 목수(박시봉)네 집 헌 삿자리(갈대로 짠 자리) 하나를 깐 방에 추위를 피하게 된 것 같다. 흙바닥 위로 습기가 차고, 겨울바람 들이치는 방에 앉아 심하게 떨고 있었으리라. 추위를 이기기엔 너무 허름한 방이었을 터. 추위가 갉아먹는 육체적 정신적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그 추운 방에 앉아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할 정도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그러다 목수네 아낙이 질옹배기(흙으로 빚은 그릇)에 짚을 넣어 불을 지펴 가져온다. 그는 그것을 안고 지낸다.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울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시인 백석은 슬프고 외로워 보인다. 슬픔과 어리석음을 새김질하는 그의 가슴이 얼마나 메어왔을까.

부끄러움과 회한을 느끼며 붉어져 오는 낯이 화끈거릴 때, 그는 기어코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그리고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부끄러움과 회한의 시간, 성찰의 시간이다.

몸과 마음의 추위가 녹을 즈음,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러나 잠시 뒤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거나 천장을 쳐다본다.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은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그가 문득 고개 들어 창을 바라보고 천장을 쳐다보면서 내 슬픔과 어리석음은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크고 높은 것은 아마도 운명을 의미함 이리라. 여러 날들 속에 슬픔과 한탄이 앙금이 될 때쯤, 더 크고 높을 마음을 향한 적극적인 탐색의 과정이 시작된다.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싸락눈이 문창을 치기도 하는 저녁, 화로를 더욱 가까이 기고 앉았다.

무릎을 꿇고. 시인 백석은 생각한다. 먼 산 뒷 옆에 바위 옆에 따로 외로이 서 있는 갈매나무 마른 잎사귀 위에 떨어지는 싸락눈 소리.

박시봉 방 안에서 떨며 지내는 자기를 말하는 눈물겨운 자존심이 아닐까. 그 드물다는 정한 갈매나무, 그를 여기 춥고 구차한 곳으로 데려왔으나 굴하지 않겠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말이다.


헌 삿을 깐 습기 차고 추운 방, 회한과 절망을 딛고 일어서 무릎을 꿇고,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떠올리던 시인 백석의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