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민음사, 2012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대표작으로 84일간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던 주인공이 청새치를 잡아 돌아오는 여정이다. 3일간 사투 끝에 대어를 잡았으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결국 고기의 뼈만 이끌고 와서 자기의 판잣집에서 고요히 잠이 든 산티아고. 그의 방으로 가보자.
두 사람은 함께 노인이 사는 판잣집 쪽으로 걸어 올라가 열어 놓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돛으로 둘둘 감은 돛대를 벽에 기대어 놓았고, 소년은 상자와 다른 어구를 그 옆에 내려놓았다. 돛대는 거의 판잣집 방 길이만큼이나 길었다. 이 판잣집은 ‘구아노’라는 대왕 야자수의 튼튼한 껍질로 지었는데 방 안에는 침대, 식탁, 의자가 하나씩 있었고 흙바닥에는 숯불을 피워 음식을 만드는 자리가 있었다. 섬유가 질긴 구아노를 납작하게 여려 겹 포개어 만든 갈색 벽에는 컬러 물감으로 그린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상과 코브레의 성모 마리아 그림이 걸려 있었다. 두 장 모두 죽은 아내의 유품이었다. 한때 그 벽에는 색조를 넣은 아내의 사진이 걸려 있었지만 그것을 떼어 버렸다. 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너무 울적한 기분이 들어 지금은 방구석에 있는 선반의 깨끗한 셔츠 밑에 넣어 두었다.
노인은 외롭다.
산티아고는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판잣집에서 혼자 산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그의 야구 이야기를 즐겨 듣고 함께 배를 탔던 소년 마눌린뿐이다.
아내의 오래된 사진마저 떼어버린 건 거의 모든 관계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홀로 항해한다. 그의 외로움은 자연이 달래준다.
그는 고통스러울 때 성모경을 외우며 그의 낚싯대에 걸려 죽을 운명인 물고기에 측은함을 느껴, 기도하기도 한다. 청새치를 잡아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의 공격으로 반쪽이 된 고기가 처량하게 보여 거듭 미안함을 표시하기도 한다.
결국 그가 항구로 돌아왔을 때, 청새치는 5.5 미터나 되는 앙상한 뼈만 남아있었다.
애써 잡은 청새치를 상어 떼에게 모두 빼앗겼지만, 산티아고는 절망하지 않는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꾼다.
산티아고는 아프리카 해변에 나타나는 사자들을 항상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는 오직 해변에서 뛰어놀고 있는 사자 꿈만 꾼다.
꿈속의 사자는 산티아고에게 원시적 세계의 회복이면서 힘과 용기를 줄 것이다.
승리감과 불굴의 정신세계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그는 안다. 해와 달을 보고 시간을 짐작하고 나침반도 없이 방향을 잡는 방법을.
그는 청새치와의 싸움에서 힘을 얻기 위해 다랑어, 날치, 돌고래 등을 날 것으로 먹는다.
그에겐 바람도 친구가 된다. 지친 몸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을 때도 사자 꿈을 꾸고 있다.
원시 세계는 그의 내면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소년은 노인을 사랑하고 노인도 소년을 사랑한다.
소년은 노인을 보살핀다. 저녁 식사를 준비해오고, 말벗이 되어준다.
노인에게 물을 길어다 주고, 노인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살핀다.
비누와 수건, 셔츠, 겨울 재킷과 신발, 그리고 담요.
소년은 노인에게 생필품은 물론이고 낚시도구를 날라주고 미끼를 잡아주기도 한다.
노인은 무심한 듯 소년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는다.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 반려자 역할도 한다.
노인은 혼자 항해할 때. “그 애가 옆에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이라고 자주 말한다.
다시 만났을 때도 “네가 보고 싶었단다.”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소년은 노인을 존경하며 노인의 시중을 정성껏 들어준다.
소년은 노인을 사랑하고 노인도 소년을 사랑한다.
다시, 산티아고의 방
노인은 청새치와 함께 항구로 돌아온다.
녹초가 되어 판잣집에서 잠이 들고, 이튿날 소년이 노인을 발견한다.
소년은 노인의 손을 보며 얼마나 고생을 한 거냐며 엉엉 운다.
커피를 준비하고, 노인을 보살핀다.
어부들은 조각배 주위에 모여들어 뱃전에 매달려 있는 5.5미터나 되는 물고기의 뼈를 구경하고 있다.
잠에서 깨어난 노인에게 소년이 커피를 준비해 주었고 노인은 말했다.
“그놈들한테 내가 졌어. 마눌린. 놈들한테 완전히 지고 만 거야.”
“할아버지가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에요.”
“그렇지. 정말 그래. 내가 진 건 그 뒤였어.”
판잣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사자 꿈을 꾸는 가난한 어부, 산티아고의 방이었다.
드넓은 바다의 거친 파도 소리와 노를 젓는 소리.
작은 어촌 마을과 멕시코 만류를 항해하는 작은 조각배.
그 배의 주인인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늙음에 저항하는 노인의 모습이.
시간과 세월에의 도전이며 고독과 죽음과의 사투다.
그러기에 산티아고는 죽음을 무릅쓰고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 올리려는 거다.
노인과 바다, 바다와 인간 이것은 A=B의 공식이 성립하는 ‘은유’다.
생존경쟁의 터전이 곧 바다이며,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시시포스처럼.
용기와 의지로 바윗덩이를 쉴 새 없이 밀어 올린다.
산티아고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운명에 도전한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은 패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