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강렬한, 책 읽기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레, 2004

by 아침놀




<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로 영화로도 유명하다.

독일 소설로는 최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열다섯 소년 미하엘이 우연히 만난 서른여섯의 한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였다.

미하엘은 황달에 걸려 구토를 했고, 우연히 마주친 한나가 집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었다.

미하엘은 그녀에게 또래 여학생들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성숙한 성적 매력을 느끼며 한나에게 빠져든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사랑에는 특별한 의식이 있었다.

읽어주기, 샤워하기,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누워있기. 이 패턴은 한나가 원했다.


그녀와 만났을 때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하자 그녀는 몸을 뺐다.
“그전에 먼저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자 나는 황혼 속에서 그녀와 함께 침대에 머물고 싶어서 더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그녀가 내 몸 위에서 잠들고 마당의 톱질 소리도 잦아들면, 그리고 지빠귀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부엌에 있는 색색의 물건들도 음영 속에 잠길 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러고 나서 9년이 지나 그들은 우연히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재판장에서 다시 만난다.

스무 살, 법대생이 된 미하엘이 법정을 방문했을 때 한나는 피고인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미하엘은 한나의 결정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갑자기 자신을 떠난 이유도.

한나는 문맹이었다.

그녀에겐 그 사실이 치명적인 약점이어서 승진도 마다하고 떠나야 했고, 유대인 수용소 학살과 관련된 보고서를 자신이 썼다는 누명을 쓰고도 인정할 정도였다. 필적감정을 받으면 형량을 줄일 수도 있었건만 형량을 줄이기보다 마지막 자존심을 택했던 한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된 미하엘은 한나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10년 동안 감옥에 있는 그녀에게 책을 읽어 녹음해서 보냈다.

그녀에게 열다섯 소년 시절처럼 다시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 것이다.

그런 관계가 지속되던 4년쯤 되는 어느 날, 한나의 편지를 받는다.

“꼬마야, 지난번 이야기 정말 멋졌어. 한나가.”

문맹에서 벗어난 한나의 편지였다.

한나는 기다렸다. 미하엘의 답장을.

그러나 미하엘은 편지를 쓰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한나는 출소를 준비했지만 하루 전날, 죽음을 선택하고 만다.





한나는 왜 자살을 해야만 했을까?

되돌아보면 한나는 문맹이란 사실을 끝까지 숨기고 싶어 했고, 미하엘에겐 더욱 숨기고 싶어 했다.

문맹에서 벗어나 미하엘에게 편지를 보냈으니 그동안의 ‘문맹’으로 살았던 시간들이 사라지는 순간이라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미하엘은 달랐다. 문맹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문맹에서 벗어난 사실을 알았지만 ‘책을 읽어 녹음하기’를 계속했다.

둘의 어긋남은 이 지점이다.

한나는 그녀의 꼬마에게 문맹이었음을 끝까지 숨기고 싶어 글을 배웠을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고생스럽게 글을 익혔을지 알고 있는 미하엘이 답장을 보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사랑의 강렬한 기억 때문이었을까. 그는 한나에게 ‘책 읽어주는 남자’로 남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당시 그는 사랑에 실패해 이혼한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강렬했던 기억을 붙들고 싶었던 것.

결국 그녀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하엘에게 있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책 읽기의 기억이 담긴 그녀의 방은 부엌과 거실이 붙어있고 발코니로 통하는 작은 유리창 외엔 햇빛이 들지 않던 방이다.

평생 잊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과 강렬한 책 읽기의 기억이 담긴 한나의 방.

그 방에 앉아 작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싶다.

한나와 함께. 때론 미하엘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