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마재 신화>, 서정주, 은행나무, 2019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가다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결혼 첫날밤
신부의 방이다.
신랑 신부의 첫날밤, 하필이면 신랑이 오줌이 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부는 수줍게 미소를 띠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녀오라고.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신랑의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린 것이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마는, 성질 급한 신랑은 돌쩌귀에 옷자락이 걸린 것을 신부가 잡아당겼을 거라 생각했다.
그새를 못 참아서. 오줌이 급하다고 했건만.
신랑은 변소에 가서 볼 일을 보고 생각해 보니, 신부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것이 음탕하게 여겨졌다.
'에잇, 여자는 ~해야 하건만… '이라는 가부장적 권위의식에 길들여진 새신랑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린 것도 모자라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못쓰겠다며.
신랑이 오해했던 신부의 행동. 신랑의 옷자락을 잡아당긴 것을 음탕한 행위로 연결 짓는 이 부부의 비극은,
아니 신부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교적 윤리관이 지배하던 시대에 결혼 첫날밤에 신부가 신랑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것은 정숙하지 못한 행동이었던 거다.
특히 중매결혼으로 신랑 신부가 얼굴도 모른 채 결혼식을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재가 되어 버린 신부의 슬픈 운명은 소통의 부재 때문이 아닐는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첫날밤에 시간이 멈춰버린 신부의 방.
돌아온 남편. 성급하고 경솔했던 자신의 행동에 때늦은 후회를 하지만, 긴 시간 인고의 기다림으로 삶을 살아낸 신부는 재가되어 날리고 있었으니. 깊은 허무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한평생을 기다리다 재가되어버린 '신부의 방'이었다.
'신부'는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神話>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일월산황씨부인당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신화는 지역별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첫날밤, 창호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를 간부로 오인한 남편으로부터 소박 당해 한을 품고 죽었다는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