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방, 침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침대

by 아침놀



nobody 아무것도 아닌 자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다.

십 년 동안 이어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그는 지혜로운 자이지만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에는 '증오받는 자'라는 뜻이 있다.

증오받는 자의 운명을 타고난 오디세우스. 그의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말처럼 “삶 자체가 고난과 좌절 그리고 희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의 고난의 시작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이모스의 동굴에 갇혔다가 불에 달군 말뚝으로 외눈을 찌르고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 후다. 처음에 외눈박이 괴물에게 그는 자신을 ’nobody 아무것도 아닌 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동굴에서 탈출한 뒤에 우쭐해져서 '이타케의 오디세우스’라 소리쳤던 것이다. 이후 그에겐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샀으니 당연한 일이다.

라이스트뤼고네스라는 이름도 긴 식인 거인족을 만나 다른 함선들과 거기에 타고 있던 전우들을 잃고 구사일생으로 도망친다. 요정 키르케는 어떤가. 그녀의 마술에 걸려들어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돼지로 변하는 위기도 겪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이렌'이란 말의 어원이 된 세이렌 자매가 사는 바위 옆도 지나고, 폴리페모스를 장님으로 만든 것에 분노한 포세이돈이 풍랑을 일으켜 요정 칼립소의 섬으로 가게 한다. 귀향을 위해 저승까지 찾아갔던 오디세우스는 이후에도 몇 번의 난파와 표류 등 죽을 고비를 넘기고, 파이아케스인들의 스케리아 섬에서 왕녀 나우시카 공주의 도움으로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꿈에 그리던 고향 이타케 섬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온 그는 웬일인지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도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그는 진실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사이 신중함을 배웠기 때문이리라.


사적인 방,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침대

한편 그의 아내 페넬로페는 그를 기다리며 100명이 넘은 구혼자들의 청을 거절하기 위해 오디세우스의 아버지에게 바칠 수의를 짠다는 핑계를 댔다. 낮에는 옷을 짜고 밤에 다시 풀며 3년이나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하녀의 배신으로 들통난 상황이다.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와 구혼자들을 다 죽이지만 정말 오디세우스가 맞는지 시험해 보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떠보고자 “침대를 옮기라”라고 말했고, 오디세우스는 "올리브나무줄기 안에 만든 침대는 옮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의 정체를 확인한다. 고대의 부부 침대는 오랜 기간 출타했다 돌아온 남편의 정체를 밝혀주는 역할을 했다.

여자들은 남편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에게 침대에 관해 묘사하곤 했는데 침대를 옮기는 것은 남편을 배반하는 행위였다고 하니 내색은 안 했을지 몰라도 오디세우스, 꽤나 놀랐을 법하다. 어쨌거나 시험에 통과한 오디세우스. 페넬로페와 함께 침실에 든다.


nobody에서 somebody로

지혜로운 자이면서 증오받는 자, 오디세우스는 그렇게 그의 침실로 돌아왔다. 올리브나무줄기 안에 만든 그와 페넬로페만이 아는 침대로. 그는 ‘고난이라면 원도 한도 없이 다 겪었다’고 페넬로페에게 말했다. 20년의 방랑을 마치고 젊음을 다 보낸 다음 그에게 찾아온 두 번째 인생, 황금의 노년이 찾아왔다.

여기서 잠깐,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불멸의 이름을 얻었을까. 궁금해진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영웅들은 각자 고유한 형용사를 갖는다. 오디세우스의 수식어에 ‘많이 견디는’(polytlas, 폴뤼틀라스)이라는 단어가 있다.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극복해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잘 참는 오디세우스’를 기억한다. 그가 이토록 원도 한도 없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칼립소가 준다는 영생도 마다하면서.

아마도 언덕 아래 그의 집 굴뚝에서 평화롭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픈 욕망과 올리브 나무줄기 안에 만든 그의 침대의 평온함을 잊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노바디에서 썸바디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의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