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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Oct 12. 2021

가까움과 멂

서평, 북에세이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더퀘스트, 201




‘어울리되 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는 능력’     

   

소연이 처음으로 배운 단어는 ‘꽃’이었다.

추석 명절을 지내러 전주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긴 시간이었다. 돌 무렵의 아이에겐 힘든 여정이었고, 차가 아예 멈춰 서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칭얼대는 딸을 안고 “이게 꽃이야.” 남편이 어르고 달래며 코스모스를 보여주었다.

울다가 멈춘 소연이 말했다.

“꼬옷?”

“응. 꽃!”.

“꼬오옷?” 

“이쁘지?”

“꼬오오옷!”

그렇게 만난 ‘꽃’이라는 존재. 울음을 멈추게 하고, 환희에 찬 표정으로 ‘꼬오옷’의 향기를 맡고, 촉감을 느끼며 그 색깔에 반했던 딸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그 꽃의 무엇이 소연의 울음을 멈추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꽃만 보면 환희에 표정을 짓게 만들었을까? 그 순간 꽃을 대하는 감정이 살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 강렬한 첫 만남 이후, 소연의 ‘꼬오옷’에 대한 환희는 점차 시들해졌다. 

꽃만이 새로운 게 아니었으므로. 이해한다.

감정은 그와 같은 것 아닐까?

반복되면 시들해진다. 어릴 때와 어른이 된 후의 감정도 다르다.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죽이는 기술을 배우게 된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배운다. 감정이 무디어져 가는 그 사이에 작용하는 것이 바로 ‘관계’ 일 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연결의 끈이 있고, 연결의 끈은 생각이 아니라 감정으로 만들어진다.”

사랑과 친밀감, 좋은 감정의 끈도 있겠지만 안 좋은 감정도 있게 마련이다.

소연이 꽃이란 단어를 배우며 울다 웃는 그 순간의 감정을 엄마라고 해서 공유되진 않는다. 솔직한 내 감정을 말하자면, 불편했다. 

명절 때마다 겪는 귀향과 귀성, 고향에 대한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내가 어찌 남편처럼 기뻐할 수 있겠는가. 감흥도 없으며, 오고 가고 열 시간씩, 거의 하루를 길바닥에서 보내는 것에 대한 내 감정은 끊을 수 없는 매듭을 안고 끙끙 앓는 상태였다. 이런 감정의 매듭과 연결된 끈들이 한둘이겠는가. 감정 사슬은 우리의 일상과 얼기설기 얽혀있다.

지난 일이지만 그때 나는 어떻게 감정의 매듭을 풀고, 어떻게 바운더리를 만들어야 했을까?

저자는 “바운더리는 자신을 보호할 만큼 충분히 튼튼하되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렵다. 튼튼하면서도 열려 있으라는 얘기다. 그에 대한 방법으로 상대를 독립적 인간으로 바라보기, 자기 보호, 상호교류를 들고 있다. 

행복한 관계의 조건, 눈여겨볼 만하지 않은가.     




관계 조절 능력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하되 합리적 의심을 할 줄 아는 것이 건강한 바운더리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이들은 상호 존중감, 자기 존중감뿐 아니라 타인존중, 상호적 관계를 잘 유지한다. 이들이 자아 중심성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자신의 자아 중심성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상대는 싫어할 수 있다는 것, 상대와 나의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임을 알고 있다.
이들은 상대의 마음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
정서적, 인지적, 실천적으로 공감할 줄 안다. 상대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위로와 친절을 베풀지만 상대의 삶을 책임지려 하거나 휘두르려 하지 않는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려할 줄 알고 상대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과 친절을 베푼다.
이들은 갈등 회복력이 높다.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갈등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갈등을 만들지 않고 좋은 관계를 가지려는 게 아니라 갈등 풀어냄으로써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자신의 마음에 바탕을 두고 표현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솔직함 아니라 상대를 배려한 부드러운 솔직함이다. 자기주장과 거절할 때의 정중함과 부드러움. 감정표현뿐 아니라 자신의 기호, 취향, 관심사, 욕구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세계를 만들어 이를 통해 비슷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한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어울리되 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는 능력, 관계를 읽는 기본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저자가 인용한 정현종의 시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사람이 온다는 것의 어마어마함이 깊게 스며든다.

존중하자, 자신을.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을 위협이 아닌 확대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관계를 읽는 시간>을 통한 마음 헤아림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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