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빈 헤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와 함께
마빈 헤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서 페루 동부 밀림에 있는 샤라나후아라는 마을 이야기가 나온다. 그 마을 사람들은 ‘고기의 부족’이라고 불린다. 사라나후아의 여자들은 남자들이 사냥을 나가 더 많은 고기를 잡아오도록 사정없이 부추기고 협박을 한다고 한다. 만약 고기가 없는 날이 이틀이나 사흘쯤 계속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여자들이 함께 모여 구슬을 꿴 것을 몸에 걸치고 얼굴에 색칠을 하고는 남자들을 한 사람씩 마을에서 몰아붙인다. 그들은 남자의 윗도리나 허리띠를 부드럽게 잡아당기면서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너를 숲 속으로 보낸다. 우리에게 고기를 가져다줘.”
남자들은 못 듣는 척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사냥을 간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헤리스, 한길사, 2012)
다음 날 아침 일찍 사냥을 떠나는 남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마도 여자들이 원하는 사냥감을 어깨에 메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당당하게 돌아오고 싶었으리라. 근육과 지방이 적당한 살코기를 권하며 데이트를 신청할지도 모른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를 읽다 보면 재미있는 기록들이 많다.
“식사의 주요 내용은 고기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장식물이다.”
“마마후아카의 식사는 고기가 없이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고기는 실리오 노인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다.”
“고기는 샤반테의 가치평가와 대화 속에서 다른 어떤 음식을 능가하는 음식이다.”
“고기가 부족해지면 야채가 풍족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고기에 대한 갈망을 표시한다.”
남아메리카의 밀림 사람들과 함께 사는 민속학자들의 보고서에 등장하는 말들이다. 고기에 대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상은 남아메리카의 토착민들 사이에 특히 흔한데, 이는 아마도 그들에게 동물성 식품을 공급해줄 가축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다른 대륙의 부족과 부락민들에 관한 보고서들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꿍부족’에 관한 연구에서 리차드 리는 남녀 모두가 식물성 식품보다 동물성 식품을 더 높이 치고 있다고 말했다. 약간의 동물성 음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진다. 수렵 채집인들과 부락의 원시 농경민들은 “고기가 먹고 싶다”라고 흔히 불평을 한다. 이때 그들은 다른 음식을 먹고 싶을 때 쓰는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을 쓴다. 아마존의 카넬라인들은 “먹고 싶다”는 말을 할 때 이모프 람(ii mo plam)이라고 말하는데 "고기가 먹고 싶다"라고 말할 때는 이야테(iiyate)라고 한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헤리스, 한길사, 2012)
고기에 대한 갈망은 고기에 관련된 특별한 ‘말’을 만들 정도로 강하다는 얘기다.
“여야 테~”
우리 집 식탁에서도 “이야테”라는 말을 안다면 아마도 자주 사용하게 될 한 사람, 나의 딸 일 것이다.
색색의 반찬들로 차려 내도 고기가 없으면 “먹을 게 없네”라고 말한다.
풀만 먹으면 배가 빨리 고프다는 푸념과 함께. 한동안은 다이어트한다면서 닭가슴살만 뜯기도 했다. 딸은 어릴 적 ‘닭다리는 왜 두 개밖에 없는가’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왜냐하면 닭다리는 두 갠데 우리는 셋이니, 나누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닭다리가 네 개면 엄마, 아빠, 나 두 개 이렇게 먹으면 되는데 말이야.”
이렇게 말하는 딸에게 닭다리를 양보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어쨌거나 우리는 육식의 종말은커녕 육식에의 의존을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가끔 유명인들이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것을 보며, “그래서 예쁜가?”라고 슬며시 따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다 고기 먹고도 예쁜 연예인을 보면 바로 돌아선다.
“먹어도 예쁘네. 고기 탓이 아니라 유전자의 차이인 게지.”
하지만 고기를 줄이거나 먹지 않는 식탁을 늘 염두에 두고 있긴 하다.
‘그래, 줄이자! 아니, 끊을까?’
이 망설임… 수렵시대를 살았던 그들은 뭐라고 말할까?
“있을 때 먹어둬.”
아닐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