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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빛

<빛을 걷으면 빛> / 성해나 / 문학동네

by 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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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구매했던 <빛을 걷으면 빛>을 읽었다.

<혼모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성해나 작가의 첫 번째 단편 작품집이다.


작가는 시대와 세대의 갈등을 찰나의 순간으로 담아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비추는 빛은 누군가를 밝혀 주고, 구하는 빛이 되기도 하고, 감추고 싶었던 진실을 들춰내는 빛이 되기도 한다. 작품집에 실린 8개의 단편은 그 빛을 따라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방황하는 청춘과 저물어가는 중년의 이야기를 담은 <화양극장>은 각자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어둠을 빛으로 밝혀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자신의 삶을 애틋하게 끌어안는다.


이들에게 비추는 빛은 어둠을 뚫고 환상을 보여주는 영사기의 빛과 같다. 언젠가 영화처럼 환상적인 화면이 그들 앞에 펼쳐지기를 바라는 빛,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며 극장을 밝히는 빛은 다시 우리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지만, 환상적인 빛이 있다는 걸 알게 됐기에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내어 보게 된다.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에서의 빛은 진실을 들춰낸다. 21세기에도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친일파 집안 행사에 사진가로 참여한 주인공은 그곳에서 진실을 정면으로 들춰내는 빛을 마주한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실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지나간 일일 뿐이다.


그 남자는 부끄러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시대가 지났어도 누군가는 반드시 져야 할 책임에 대해. 죄의식에 대해.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조부가 변론을 하려는 지 무어라 입을 떼려 할 때 오수의 아버지가 그의 말을 끊고 외쳤다. 전혀. 우리가 이룩한 건 선대와 무관합니다. P200~201


사과를 할 마음도 반성의 마음도 전혀 없는 사람들을 보며 주인공은 씁쓸함을 느끼지만,

거기 까지다. 방관자가 되는 주인공의 입장을 탓할 수 없다. 진실을 밝히고자 앞서는 사람이 된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린 대부분 방관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진실이 드러날 수 있도록 빛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고맙고 안도할 뿐이다.


<당춘>에서의 빛은 세대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쏟아지는 봄의 햇살이다.

소설 속 헌진은 마을 활성화 유튜브 콘텐츠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영상 촬영과 편집 방법을 알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시골로 내려간다.

되는 일도 없고 의욕도 없었던 도시 생활에 지쳐가던 헌진에게 시골 어르신들의 배움을 향한 열정은 ‘되지 않는 일에’ 아등바등 애쓰는 자신의 모습처럼 보일 뿐이다.


나는 늘 그랬으니까.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복직에 희망을 걸고, '여로가 평안하길 바란다'는 넉넉한 덕담을 건넬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다시 도래하길 바라고, 희미해지는 우정을 미약하게나마 지속되길 고대하고...... 아둔하고 무모하게. 애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P.250


‘애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라고 말하지만 사실 애쓰면 언젠가 될 거란 위로를 헌진은 바랬던 게 아닐까? 추운 겨울을 잘 견디고 살아내면, 언제 추웠나 싶을 만큼 따뜻한 봄 햇살을 마주하는 것처럼.


그 봄의 빛은 이제 막 인생을 꾸려가는 젊은 세대에게도, 인생의 굴곡을 겪고 안식을 마주한 노년의 세대에게도 모두 공평하게 비추는 빛이기에 더 소중하다.


성해나 작가의 <빛을 걷으면 빛>은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의 그 후 이야기가 궁금해서 단편으로 끝내기 아쉬울 정도이다.

8편의 단편에 담긴 다양한 주제는 작가가 지금의 시대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올 상반기 아마 가장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은 성해나 작가의 신작 <혼모노>는 아직 읽지 않았다.

이번 단편집을 읽으며 성해나 작가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기에 조만간 읽어 볼 생각이다.

작가의 시대를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이 더욱 반짝이고 날카로워졌기를 기대하며 앞으로의 작품 활동을 기대해 본다.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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