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안해지는 공식
망했다.
제주도 내려와서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 부부 퇴직금, 아파트 전세 보증금 채무
그것도 모자라 사업자 대출, 신용대출 정확히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2억 가까운 돈을 까먹었다. 아니 지금도 까먹고 있다.
도저히 이렇게 가게를 유지하다가는 육지에 있는 작은 아파트마저 홀랑 날려 먹을까 봐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다 내려놓고 가게를 정리하기로 남편과 합의를 했다. 사실 홀랑 날려 먹을까 봐 걱정이었던 아파트도 이미 내놓았다.
그렇게 가게를 정리하기로 합의한 다음날, 마침 같은 성당에 다니는 언니와 약속이 있었다.
평소 우리 가게 단골손님이던 성당 언니를 만나 이래저래 가게를 내놓기로 했다며 주저리주저리 찌질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던 언니가 위로차 주변 가게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듣고 보니 비싼 외제차 타고 매장을 늘려가는 잘나가는 가게 사장님은 보기와는 다르게 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 집 와이프는 남편의 돈 벌어오는 능력만 아니었다면 벌써 이혼했을 거라고 언니에게 하소연을 했단다. 또 언니가 자주 가는 커피숍 사장님은 육지에서 커피숍을 6개나 할 정도로 잘나가는 사장님이었는데 어쩌다 망해 먹고 빚이 10억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 빚을 갚느라 온갖 일을 다하며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지금 제주도로 내려와서 차린 게 현재의 커피숍이라고. 그런 속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커피숍 사장님은 본인 색깔에 맞게 매장을 잘 운영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참 놀라운 이야기였다.
나는 그저 밖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그들이 모는 비싼 외제차와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커피숍 매장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왜 우리 집 마당 잔디보다 남의 집 마당의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이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고 웃고 하다 보니 희한하게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울하고 속상하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
다들 푸른 잔디를 뽐내고는 있지만 그 이면에 다른 것들은 잔디의 푸르름에 감추어져 잘 보이지 않는 것뿐이라면?
나만 이렇게 못나고 나만 이렇게 힘든 일을 겪는 줄 알았는데 다들 말 못 할 속사정 또는 쓰라린 경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 말해준다면?
지금 혹시라도 실패를 겪고 있다거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잘나가는데 본인이 하는 일은 잘되지 않아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망한 이야기나 조금은 불편한 속사정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불안감이나 자괴감보다는 입가에 엷은 미소와 함께
희망 비슷한 것이 피어오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사람은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 행복해지는 게 맞는가 싶기도 하다.
나만 그런 거 아니고 남들도 그렇다. 이런 공식이 어느 정도는 성립된 후에야 안도감이 들면서 편안한 기분이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어떠신가요?
저의 돈 까먹고 망한 이야기 들어보시니까 희한하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않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