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손님이라는 친구

부지불식간에 브라와 팬티만 남겨진 사이

by 미오

이십 대 때는 나의 젊음과 사랑스러움을 마음껏 안아줄 이성 친구가 곁에 필요했다. 가장 예뻐해 주고 가장 사랑해 주고 나의 외로움을 언제든 달래줄 그런 이성 친구. 그러나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기도 하고 더는 예쁨 받고 사랑받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해지지 않는 때가 온다. 아 가장 중요해지지 않는 때. 반면 마흔을 앞둔 지금의 나는 나를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동성 친구가 나를 더욱 북돋워주고 생기 있게 해주는 것을, 그리고 그에 따르는 편안함과 안도감을 경험하곤 한다.


단골손님으로 자주 오는 여자분들과 어쩌다 보니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매일 보는 사이기는 하지만 친구까지는 글쎄. 아무튼 그런 관계를 유지하며 잘 지내곤 했다. 그런데 워낙 자주 만나기도 하고 우리 집이 와인을 파는 술집이다 보니 와인을 마시며 술기운에 몇 번 속 이야기를 훌렁훌렁 벗어던졌다. 사실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이미 브라와 팬티만 입은 모습을 서로 보여주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아직은 좀 어색한 면이 없지 않은데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들은 서로를 불편하게 했다. 아니 적어도 나는 불편했던 것 같다. 오히려 살금살금 눈치 보면서 서로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던 때가 그리울 정도였다.


소규모로 동네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에게 단골손님은 여러모로, 심적 그리고 물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꾸준한 매출과 입소문을 책임져주는 단골손님은 그야말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관계가 좀 더 발전해 친구 비슷한 사이가 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메뉴판에 없는걸 해달라고 한다든지, 영업시간을 훌쩍 넘겨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든지,

단골손님 친구가 오면 나도 한자리 차지하고 노느라 장사를 소홀히 하게 되고 또 같이 자리에 앉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른 손님들에게 나의 사생활 이야기가 노출이 되기도 한다. 또 내 컨디션은 영 꽝인데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해 주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일들이 자주 있다 보면 내가 그들에게 보내던 자본주의 미소와 상냥함은 온데간데없고 편안한 사이에서나 보이는 나의 예민함과 까칠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소심한 나는 우리 집에 안 오면 어쩌지 이런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아무래도 손님들은 우리 집에 즐기러 오는 반면 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나 혼자 괜히 비교를 하거나 속으로 신세한탄을 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남들은 마냥 즐기고 편하게 사는 것 같아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이다.


남편과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본인은 전~혀 배가 아프거나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해서 나만 나쁜 년, 쓰레기 같은 자괴감이 들어 치를 떨었던 일도 있다. "하! 지금 생각해도 얼척없어!"


또 하나 문제는 단골손님 친구도 손님이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되는 척, 사람들이 우리 매장을 여러모로 자주 이용하는 척을 하는 데서 비롯된다. 장사가 안되고 손님이 없어서 마음을 끓이고 있다가도 단골손님 친구들이 오면 다른 손님들이 이미 한차례 다녀갔다는 둥 오늘은 배달이 많았다는 둥 묻지도 않는 말을 하면서 웃어 보이곤 한다. 하루 매출과 손님의 들고남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널을 뛰는 불완전하고 못난 모습은 보일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나의 모습은 잘 숨기고 친구들 앞에서는 성격 좋은 사장님이고 싶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상황들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 없이 자랐던 나는 새 학기가 되어 새롭게 사귄 친구에게 엄마가 없다는 말을 언제 하면 좋을지 여러 번 타이밍을 재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단골손님 친구들에게도 장사가 생각처럼 잘되지 않아서 내가 불안과 걱정에 시들어가고 있는 사정을 털어놔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잘 되는 척 허세를 부려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들을 얻었다. 물론 친구들은 하나 남은 집까지 다 털어먹게 생긴 나의 현재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내가 남편인 이성에게는 받지 못할 이해와 공감을 이 단골 친구들에게서 흠뻑 받고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책을 서로 선물해가며 같이 읽기도 하고 떡볶이와 달달한 스파클링 와인을 싸 들고 소풍을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밤마다 모여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는 남편 흉을 보느라 정신이 혼미해질 때도 있다. 그 와중에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눈물이 찔끔 나도록 웃기도 하고 코를 훌쩍이며 울기도 한다. 이렇게 친구들과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마음이 정말 풍요롭고 따듯해진다. 내 비록 지금 장사는 실패해서 매출은 엉망이지만, 신이 이 사람들을 곁에 보내주시려고 이 자리를 지키도록 하셨나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훌렁훌렁 나를 벗어던지고 정작 속옷 만 입은 나를 보여 주었을 때 그리고 친구의 그와 같은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는 겹겹이 쌓여있는 중부 지방만큼이나 두터운 우정을 발휘하게 된다. 생김새며 살아온 이야기며 가치관이며 세계관 모두 참 다르지만 동성으로써 가지는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후에는 더 이상 예쁜 외모나 잘난 재능, 경제적 능력이 부럽지가 않다. 그냥 친구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무튼 여자들의 우정이란 시기와 질투를 반복하다가 생긴 미안함과 연민으로 더욱 가까워지는 그런 단순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 너머에 여성으로서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충분한 이해와 열렬한 응원을 보낼 수 있을 때 그제야 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리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놀면서 멋지게 나이 들어 갈지를 함께 이야기할 친구들이 지근거리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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