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내담자
임미옥
검은 얼굴을 한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내 앞에 앉은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다.
얼굴을 덮은 머리카락 사이로
흐린 눈빛 하나 반짝인다.
오래 꼭꼭 닫아 두었던
비밀의 첫 장을 조심스레 펼친다.
입술 끝이 살짝 떨린다.
그 말 하나
내 안의 오래된 문을 두드린다.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른다.
흘러나온 고백이
낯선 듯 익숙한 기억을 건드린다.
그녀는 내 그림자였다.
빛을 향해 오래 숨 고르던
어둠 속의 작고 푸른 싹이었다.
♧ 시인의 노트 – 「내담자」를 쓰며
상담실의 문을 열고 처음 들어오는 순간은 내담자에게도, 치료자에게도 가장 조심스러운 첫 걸음이다.
그 한 걸음이,
말 없는 침묵이,
덮인 머리카락 너머의 흐린 눈빛이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녀가 펼쳐든 첫 고백은
나를 향해 돌아오는 길이기도 했다.
내담자, 그녀는 어쩌면
내 안에 오래 잠들어 있던 나 자신이었다.
이제 우리는
긴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어둠과 빛을 조심스레 마주하며
한 걸음씩 온전함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림자가 아무리 짙어도 결국 빛이 비치면 옅어진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그림자는 빛이 올 때까지 조용히 숨쉬며 버티던 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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