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연주

by 혜윰의 해밀

“글은 사라지기도 하지만, 깨달음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다시 연주되기를 기다린다.”


[심오재일기 ⑩] 2024.12.5.

죽음의 연주


글쓰기는 애틋한 일이다. 그것은 나를 잠들지 않게 해 주고, 깨어서 기도하게 하는 강력한 방편이다. 정과 한과 꿈과 소망이 가득 담긴 글은 마치 생명체처럼 소중하다. 분신 같다고 할까, 내 정신의 일부라고 할까. 자식만큼은 아니지만 그 못지않은 무엇 같다. 그렇기에 내가 쓴 글이 집 떠난 자식처럼 어딘가 자리 잡고 있으면 안심이 되지만, 자리를 못 잡고 떠돌고 있거나 골방에 웅크리고 있으면 걱정스럽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올 들어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독자가 얼마가 되더라도 흩어진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 놓으려고 마음먹었다. 책은 글의 집이다. 천대받던 글들에게 내 손으로 어엿한 집을 지어, 안락하게 지내게 하고 싶었다.


어딘가 발표했던 글들은 그나마 찾아 모으기 쉽다. 그런데 쓰기만 하고 놓아둔 글들 중에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세월이 많이 지나면 내가 그것을 썼었나 싶은 것도 있고, 어디에 발표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서 글쓴이는 어느 정도 글이 모이면 책을 펴내야 하나 보다.


‘죽음의 연주’도 그 가운데 하나로, 내가 삼십 대 중후반에 썼던 수필이다. 페이스북에 수필 작품 정리 공간을 마련하고 세 번째로 올리려고 했다. 이틀 동안 거실과 이층 책장과 다락에 쌓인 서류들을 다 뒤졌는데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어디로 갔을까.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황망하여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것과 대비되게 쓰려던 ‘삶의 연주’도 쓸 수가 없다. 마치 내 영혼의 한 조각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망했다.


5.18의 악몽이 계속되던 1981년 보았던 동명의 영화를 모티브로 썼던 수필이었다. ‘죽음의 연주’는 이십 대 초반의 내 영혼을 뒤흔들고 사로잡았던 영화 제목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계 여성 음악가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그 영화 한 편으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라는 이름은 내 영혼에 각인되었다. 그녀가 연기한 파니아라는 유대계 여성 음악가의 모습은 그 시절 나에게 하나의 충격이자 새로운 이상의 출현이었다.


파니아는 바이올린을 들고 무대에 서던 음악가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다. 머리카락이 잘리고, 이름 대신 번호가 새겨지고, 악기 대신 침묵과 굶주림이 주어진다. 영화는 이 과정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따라간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잔인했다. 인간이 인간을 벗겨내는 과정이 이렇게도 조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파니아가 고급 모피 코트와 보석들을 벗어 내려놓는 장면이 오래 남았다. 값비싼 외피로 둘러싸여 있을 때에만 존엄해 보이던 인간은, 그것들이 벗겨지는 순간 추락할 것이라는 우리의 익숙한 추론을 그녀는 죽음의 연주로 정면에서 뒤집어 놓았다.


수용소 안에서 파니아는 다시 음악을 연주하게 된다. 다만 그것은 예술을 위한 무대 위에서가 아니라,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행렬 앞에서였다. 음악은 위로가 아니라 죽음을 장식하는 도구처럼 쓰였다. 그러나 그 연주를 하는 파니아의 자세는 이상하리만치 흐트러지지 않았다. 굶주린 몸으로, 부서진 삶 위에서 그녀는 끝내 연주자의 자세를 놓지 않는다. 활을 쥔 손에는 공포보다 집중이 먼저 깃들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 파니아는 말한다.

“그들이 내 몸은 빼앗을 수 있어도, 내가 누구인지를 빼앗을 수는 없어.”

이 한마디는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토록 우아한 여성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발가벗겨질 수 있을까가 아니었다. 영화의 핵심은 폭력이 안겨준 비참 앞에서도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그 장면들을 보며 나는 묻게 되었다.

어떻게 인간은 모든 것을 박탈당한 자리에서도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삶은 죽음보다 먼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녀는 죽음의 수용소라는 비참 속에서도 음악가로서의 품위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것이 당시 나에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와서 오랫동안 화두처럼 되새겨졌다. 이 질문들은 훗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죽음 앞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만이 끝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는 그 통찰은, 이미 파니아의 연주 속에 살아 있었다.


죽음 앞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인간답게 살아갈 힘을 지닌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그것이 당시 인생 풋내기였던 내가 맺은 나와의 약속, 결심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원고는 물론 영화까지. 어쩌면 나는 원고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던 시절의 깨달음과 결심을 잊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내가 이 글과 영화를 다시 떠올려 소환하는 것은, 그 결심과 감각을 되살려 삶의 태도를 새롭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잃어버린 ‘죽음의 연주’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기록해 두고, 다음 순서로 나아가려 한다. 영화의 원제목 또한 ‘Playing for Time’, 곧 ‘삶의 연주’이기 때문이다.

영화 《죽음의 연주(Playing for Time)》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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