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의 말

by 혜윰의 해밀

“심장은 말을 하지 않지만,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낸다.”


[심오재일기 ⑱] 2026.1.11.

심장의 말


며칠 전부터였다. 새벽이면 이유 없이 번쩍 놀라 깨곤 했다. 꿈 때문도, 걱정 때문도 아니었다. 마음은 비교적 고요한데 몸이 먼저 놀라고 떨렸다. 심장이 갑자기 뛰고, 한동안 안정이 되지 않았다. 그저 이상한 밤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오늘, 그 신호는 더 이상 멈추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쉬려고 앉아 있는데 오목가슴 있는 자리에서 조여 오는 느낌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이상이 생긴 것 같아 혈압계를 찾아 재 보았다. 혈압은 70~80대로 평소보다 약간 낮았지만 원래 저혈압 체질이기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문제는 맥박이었다.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이 곧바로 느껴졌다. 평소 60~70 수준이던 맥박이 138이었고, 5분 간격으로 몇 차례 다시 재 보았지만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몸은 분명히 비정상이었다.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는데 몸만이 폭주하고 있었다. 불안해서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심장이 뛰어서 몸이 먼저 놀라고 있었다. 그냥 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도 맥박은 130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두 시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 시간이 너무 길고, 무섭고, 힘들었다.


피검사에서도, 엑스레이에서도 이상은 없다고 했다. 맥박을 안정시키는 주사를 맞고 한 시간쯤 지나서야 심장은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았다. 마지막 한 시간은 70 정도로 유지되었다.


의사는 ‘특발성 심실 빈맥’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원인은 지금으로선 알 수 없고,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내 심혈관 구조가 약간 특이하다고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혈류가 갑자기 옆에 있는 작은 길로 빠져서 일시적으로 신호 체계에 혼란이 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또 빈맥이 오래 지속되면 심장이 ‘퍼질 수 있다’고 했다. ‘터지는’ 것이 아니라 ‘퍼진다’는 표현이 낯설었지만, 그 말을 듣자 무서웠다.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 저를 지켜주소서. 제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지켜주소서.


나는 아직 죽기 싫다. 더군다나 심장이 멎어서 급사하고 싶지는 않다. 딸들도 더 지켜봐야 하고, 남편도 걱정되고, 정리해야 할 글들과 지도해야 할 사람들이 남아 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눈 내린 밤길을 남편이 운전해 나를 응급실로 데려왔다. 나는 응급실 간이침대 위에서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그이는 한밤중 비좁은 대기실에 앉아 세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놀랐을 것이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이에게 미안했고, 건강도 걱정되었다. 이제 우리는 둘만 남았고 늙어가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심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오늘은 잘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은 몸의 엔진이다. 엔진에 갑자기 이상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차는 멈추거나, 속도를 잃거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튕겨 나갈 것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본다. 엔진은 정말 갑자기 고장 나는 걸까?


소음은 오래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세한 떨림, 연비의 변화, 가끔씩 울컥거리는 숨 고르기 같은 것들. 운전자는 바빴고, 길은 계속 이어졌고, 차는 그럭저럭 굴러갔다. 그래서 나는 그 신호들을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엔진에 이상이 생긴 이유를 단번에 하나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부하였을 수도 있고, 연료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오래 누적된 피로였을 수도 있다. 혹은 멈추지 않고 달려온 시간 자체가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노후화의 한 징후였을지도 모른다.


심장은 사랑과 열정의 엔진이지만, 이성으로 점검하고 제어하지 않으면 위험해진다. 오래된 엔진을 깨우는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 기술이고, 작동 중인 엔진이라면 주기적인 관리가 수명을 결정한다. 주기적인 웜업 가동도 필수다.


그래서 심장은 오늘 나에게 속도를 줄이라고 말한다. 더 빨리 가라는 말이 아니라, 이제는 기어를 낮추고 엔진 소리를 들으라는 요청이다. 손볼 것은 손보고, 멈춰둔 차에 시동을 걸 듯 적당히 운동도 하라는 얘기다.


심장은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며칠 전부터 밤마다 작은 신호로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에서야 그 말을 제대로 들었다.


고장은 파국이 아니라 정비의 신호일 수도 있다. 엔진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 나는 아직 운전석에 앉아 있다. 심장은 나에게 아직 시간이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아직은 삶을 선택할 때라고.

♤ 조르주 드 라 투르, 「연기 나는 불꽃을 든 막달라 마리아」, 1640년경
– 어둠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침묵 속에서도 자신을 태워 신호를 보내는 마음의 심장

월, 화, 수 연재
이전 17화설거지 명상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