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누군가를 떠받치는 일이다.”
[심오재일기] 2024.1.13.
우리는 모두 서로의 의지목
“잘 살아오셨어요.”
큰딸이 엄마의 옛 사진들을 보며 말했다.
돌아보면 나는 수면 아래에서 분주히 자맥질하는 백조처럼 살아왔다. 삶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날지도 못하는 주제에 종종거리며 살아오느라 딸들에게 상처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부쩍 힘이 빠져가는 엄마를 위로하듯, 큰딸이 뜻밖의 말을 건넨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 심리상담 프로그램에서 6·25 전쟁과 전후 연좌제로 고통받은 가족사의 이야기를 보았다고 한다. 그걸 보며 엄마 아빠도 5·18이며 IMF 같은 사회적 격변을 겪으면서 잘 버텨와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식민지와 전쟁과 분단을 온몸으로 통과해 온 조부모 세대에 비하면 고생이랄 것도 없을지 모르지만, 개인의 삶을 흔드는 사회적 이변 속에서 살아온 부모 세대의 무게가 새삼 느껴진 거다.
그렇게 느껴지면 철이 드는 것이다. 부모의 삶이 측은하고 장하게 느껴진다면,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딸이 철이 든다는 사실이 왠지 짠하다. 더구나 딸들이 타인의 심리적 고통을 공감하고 보듬는 상담 일을 한다는 것이 대견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사람은 본래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자라다가, 다시 누군가의 의지가 되면서 어른이 된다. 외로움을 견디고, 비바람과 눈보라를 통과하며 제 자리를 찾아간다. 어른이 된다는 것, 누군가의 버팀목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버거운 일이다. 나이가 들면 어련히 잘 해 나가리라 믿고 싶지만, 자꾸 앞서는 걱정은 엄마의 기우일 것이다. 그 기우를 내려놓기 위해 나는 나무를 떠올린다.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연약한 능소화나 담쟁이덩굴뿐 아니라, 강인한 포도나무나 등나무도 처음에는 바닥을 기다가 다른 무언가에 몸을 기대어 무성해진다. 홀로 서 있는 듯 보이는 나무들조차 가까이 선 나무들과 바람을 나누고 기운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살다가 아예 하나가 된 나무들도 있다. 뿌리가 하나 된 연리근, 가지가 하나 된 연리지, 온몸이 하나가 된 연리목들처럼.
최근 특히 마음을 붙드는 두 나무를 보았다. 경북 영덕 인량 전통마을 입구의 크고 작은 두 그루 나무다. 큰 나무는 쓰러진 채 작은 나무에 기대어 있고, 작은 나무는 똑바로 서서 그 큰 나무를 지탱하고 있다. 불균형하지만 장한 그 모습이 마음을 찡하게 했다. 내 눈에는 쓰러진 엄마나무와, 그를 떠받치는 딸나무처럼 보였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될지 모른다. 죽는 날까지 자식들 힘들게 하지 않고 서서 살다 가고 싶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나 또한 몇 차례 다치고 아파 병상에 눕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늘 꿋꿋하게 우리를 지지해 주던 큰시누이가 내 옆에서 갑자기 주저앉아 뇌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그 뒤로 생로병사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졌다.
시누이의 병실에서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섬망에 빠진 엄마의 병상 곁에서 하루 종일 말을 건네는 딸을 본 적이 있다.
“엄마, 꽃 좋아하지. 원예가 취미시잖아. 무거운 돌도 거뜬히 옮기던 우리 엄마가 얼마나 씩씩한데. 어서 일어나서 또 꽃시장 가셔야지.”
아침 새처럼 쫑알대는 딸의 음성이 병실에 맴돌았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내 딸들도 내가 오래 누워 있을 때 그렇게 곁을 지켜주었고, 우리 자매들도 엄마의 병상 곁을 떠나지 않았었다. 엄마가 일찍 떠난 뒤, 내 바람은 아프지 않고 오래 딸들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되었다. 누구나 때가 되면 떠나야 하지만, 부모란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존재인지 모른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낫지만, 어딘가 나를 닮은 큰딸.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니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딸들이 부디 꿋꿋하면서도 나긋나긋한 사람이 되어, 친척과 친구와 이웃 속에서 서로의 의지목이 되어 살아가기를. 그리고 내가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켜볼 수 있기를, 오늘도 조용히 기도드린다.
♤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달을 바라보는 두 남자」, 1819년경.
– 나란히 서서 같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 이미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