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속과 가짜의 시대에 붙드는
[심오재일기] 2026.2.18.
가속과 가짜의 시대에 붙드는 사랑의 원본
남은 전을 다시 지지고, 시금치나물을 무치고, 양념 꼬막을 새로 했다.
모처럼 긴 휴식을 마치고 레지던스로 돌아가는 작은딸에게 싸 주려고 서둘렀다.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딸의 차 뒤로 몇 번 성호를 긋고 들어왔다.
설거지를 마치고 겨우 앉자 집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요즘 작은딸은 무슨 말을 해도 "응, 응." 할 뿐 긴 말이 없다.
맞장구는 치지만 마음은 닿지 않는, 영혼이 비켜 선 대답이다.
대학 인권센터에서 2년을 일하며 세상과 사람을 너무 알아버렸다고 했다.
이제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속내가 훤히 보이고, 예전처럼 내가 최선을 다하면 상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도 사라졌다고 했다.
말은 담담했지만 눈빛에는 오래 깎인 흔적이 있었다.
영혼이 서서히 닳아간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런 딸이 빨래한 옷들을 단정하게 개켜 두고 간 것을 보니 울컥 눈물이 솟았다.
접힌 모서리가 반듯했다.
이제 정말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큰딸은 교제 중인 남자친구와 결혼 이야기를 나누고,
남편은 떡국을 먹다 세 개짜리 임플란트 틀니가 빠졌다.
설날에 모인 조카들의 화제는 단연 AI였다.
여러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고, 법조계에서는 사용을 제한하려 한다고 했다.
심지어 인간의 척추도 손상되면 재생되는 의술이 가능해질 거라고도 했다.
하등동물에게만 가능했던 재생의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기술이라나.
세상은 빠르게 고쳐지고, 새로워지고, 대체된다.
그런데 남편의 이는 다시 자라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도, 한 번 닳은 신뢰도 그렇게 쉽게 재생되지는 않는다.
기술은 재생을 약속하지만, 상처는 여전히 시간을 필요로 한다.
텔레비전 앞에 앉은 작은딸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말했다.
"볼 게 하나도 없네."
"그러게. 채널은 그렇게 많은데도."
그러다 한 드라마에 멈췄다.
"잘 만들었네." 하며 끝까지 몰입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뭘 말하려는 거지?"
나는 창가 식탁에서 전을 지지며 말했다.
"짝퉁의 짝퉁의 짝퉁. 결국 짝퉁들의 세상이라는 얘기겠지."
"엄마는 안 보고 소리만 듣고도 어떻게 알아?"
"뻔하지. 요즘 드라마나 영화는 눈 돌릴 틈 없이 보게는 만드는데, 보고 나면 허무하더라."
형식은 정교해지고 속도는 빨라졌는데, 정작 남는 것은 없다.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사람들은 또 그렇게 영혼을 바쳐 열심히 산다.
그럼 무엇이 남을까.
나는 다시 부엌으로 간다.
칼로 마늘을 다지고, 국간장을 넣고, 불을 줄이고, 다시 간을 본다.
요즘 누가 설 음식을 하냐지만, 이 시간이 나는 좋다.
힘이 들어도 이상하게 뿌듯하다.
세상은 가속하고, 기술은 진화를 거듭하고, 드라마는 눈부시게 잘 만들어지는데도 허무하고, 젊은 영혼은 일찍 닳아간다.
그 속에서도 나는 전을 뒤집고, 나물을 무치고, 꼬막을 버무린다.
혹시 이것이 남는 것 아닐까.
거창한 말도 아니고, 세상을 뒤흔드는 주장도 아니지만, 식구들의 하루를 따뜻하게 하는 한 끼.
늙어서야 철이 든 걸까. 아니면 이제야 무엇이 원본인지 보이기 시작한 걸까.
설거지를 하면서 어둠 속으로 멀어져간 딸의 차와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화살기도를 올린다.
영혼이 굳지 않기를.
거짓 속에서도 스스로 거짓이 되지 않기를.
사랑을 믿는 마음이 끝내 마모되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
재생되지 않는 것들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