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부도에서
[시와 시인의 노트] 2025.4.6.
같은 밝기로
– 제부도에서
임미옥
바다 앞에 서면
말들이 먼저 잠잠해진다
바다는 파도를 철썩이며
밀려왔다 밀려간다
그 안에서 괭이갈매기 떼
바람의 궤적을 그리며
하늘 바다 땅을 누비고
해변에서는 아이들이
젖은 조가비를 모아
모래 위에 작은 나라를 세운다
해안길 걷는 어른들은
굳은 말 몇 마디
해풍에 풀어놓으며
입가에 묵은 소금기를 턴다
파도에 깎인 매바위와
세월에 닳은 탑재산 해안 절벽
소나무와 진달래가
서로의 기울기를 받쳐 서 있고
등대 옆
긴 낚시대를 드리운 사내
걸리지 않는 시간을
천천히 감아 올린다
어쩌다 걸려든 망둥어 두어 마리
살림통 속 고요를 헤엄치며
잠시 빛을 뒤척인다
햇빛은 어디에나 내리고
쥔 손과 빈 손 위에
다르지 않게 머문다
밀물과 썰물을
같은 밝기로 어루만진다
✍ 시인의 노트 ― 「같은 밝기로 – 제부도에서」를 쓰며
정치의 격랑으로 온 나라가 오래 흔들리던 겨울을 지나, 초봄의 어느 날 제부도를 걸었다.
파도는 밀려오고 갈매기는 날고, 사람들은 긴 추위에 웅크렸던 어깨를 펴고 모처럼 걸음을 풀어냈다. 해안길을 걷는 어른들 사이로 오래 묵은 말들이 바람결에 흩어졌고, 해변에서는 아이들이 조심스레 조가비를 주워 모래 위에 작은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파도와 세월에 깎인 바위들이 드러난 바다는 넓게 열려 있었고, 그 위로 하늘은 말없이 무량의 빛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알았다. 햇빛은 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밀려오는 것과 밀려가는 것, 잠시 머무는 것과 다시 비워지는 것, 그 모두 위에 같은 밝기로 내려앉는다는 것을.
나는 그 빛 속에서, 조용히 삶의 위로 하나를 길어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