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에는 시집이지

입원 준비

by 미르

입원 준비물을 챙긴다.

칫솔, 치약, 속옷, 수건, 물병,

슬리퍼, 물티슈, 갑 티슈 ......

쇼핑백 하나에 잡다한 각종 물건들을 담았다.


책을 한 권 가져가고 싶다.

정확한 입원 기간을 알지 못한다.

대략 4, 5일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병원 안에도 도서관이 있지만

입원 생활 중 도서관까지 가서

빌리고 반납할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책장에 새침하게 줄 서서 있는

못 읽은 책들을 가져가서 읽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싶은 이성의 아우성을

무시하지 못한다.


얇은 시집 한 권이 당첨되었다.


선정 이유.

1. 가볍다.


소설이나 일반 책에 비하면

압도적인 얇음으로

무게에 대한 부담을 덜어 준다.


2. 아무 곳이나 펼칠 수 있다.


소설 같은 경우는 스토리가 이어져야 하기에

북마크가 거의 필수적이다.

하지만 시집은 순서대로 읽어도 되지만

손 가는 대로 펴서 한쪽씩 읽어도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자기 직전 시 한 편.

멋지다.


3. 읽을 때마다 새롭다.


줄거리에 치중하며

소설을 빠르게 읽어내고 나서

한 번 읽은 소설은 다시 읽지 않는다.


하지만 시는 다르다.

시는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구절도 다르며

시의 느낌도 미묘하게 다르게 다가온다.

신기한 일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시를 읽는 듯하다.

짧은 시 한 편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시집을 가방에 넣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수시로 환자, 간호사, 의사들이 드나들고

그 외에서 식사, 청소 등 많은 끊김이 있을 때

아쉬움 없이 끊을 수 있었다.


페이지 넘기기도 귀찮을 때

한 페이지에서 보물을 찾는 것처럼

아름다운 단어를 오래오래 보고 있었다.


불을 다 꺼도 복도의 환한 불빛 때문인지

완전히 어둡지 않은 진한 밤,

낯설고 불편한 느낌에 문득 깨어

침대 바로 옆에 올려 둔 시집을

아무렇게나 펴서 시 한 편을 읽고

마음에 그 시를 가지고

침대에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3박 4일 입원 기간 내내

책상 혹은 침대 옆 수납장 위에서

시집은 자리 잡고 앉아

은은한 연둣빛을 빛내며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아무렴, 입원에는 시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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