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by 미르

오후 4시에 입원을 했다. 4인실 간호 간병 통합 병실이다. 특별히 간호 간병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부족한 병실이 문제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병실을 만나기는 힘들다. 병실이 나온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분위기이다. 병원에는 아픈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이비인후과 병동으로 가야 하겠지만 병실이 없다. 그래서 바로 옆의 성형외과 병동으로 입원한다. 6인실을 4인실로 만들었다. 남는 공간에는 냉장고와 휠체어, 링거를 꼽고 돌아다닐 수 있는 바퀴 달린 옷걸이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병원에서 주로 사용되는 바퀴 달린 옷걸이 같은 것의 공식 명칭이 궁금하다. 찾아보니 '링거 폴대'라 한다. 각각의 사물에도 이름이 있다. 아마 영어 'pole'에서 나왔나 보다. '폴'만 쓰기가 외로워서 '대'를 붙여 대접해 줬나 보다.


4인실이지만 2명의 환자가 있었다. 병실 앞 팻말에는 '67세/여'라 적혀 있지만 아무리 봐도 67세까지는 보이지 않는 아줌마. 그리고 23세의 아가씨이다. 간호 간병 통합 병실이라 간병인이 꼭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어린 아가씨 옆에는 든든한 어머니가 있었다. 딸이 오늘 입원해서 내일 간단한 수술을 하고 바로 퇴원을 하는 데도 엄마는 걱정이 가득하다. 입원, 병원, 수술. 그렇지. 이런 것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이지. 엄마가 필요하지. 나도 엄마가 좀 필요한데.


엄마 대신 단단한 남편이랑 같이 와서 각종 설명을 들었다. 서명을 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손목에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손목 띠 같은 환자 인식표를 달았다. 음, 자유롭기는 했다. 병실, 병동이 지겨워져 1층의 로비로 왔다 갔다 할 때, 손목의 인식표를 병동 문 옆의 인식판에 찍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조금 있다가 의사 선생님이 와서 머리를 깎았다. 이런. 이비인후과 입원 안내문에 머리를 깎는 이야기가 있긴 했다. 미리 설명을 들은 일부 환자의 경우에 귀 주변의 머리를 깎는다고 했다. 미리 설명을 듣지 않아서 나의 경우가 아닌 줄 알았다.


이발기를 들고 왼쪽 귀 주변 3cm까지 시원하게 확 밀어 버렸다. 귀의 앞쪽이 아픈데 귀의 뒤쪽까지. 어깨를 넘어가는 긴 머리라서 작은 인형 가발 정도는 나올 만한 기나긴 머리카락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졸지에 한쪽 머리를 바싹 깎은 미래 여전사 혹은 과격한 분위기의 래퍼가 되어 버렸다. 싸움 못하는 여전사와 외치지 못하는 래퍼. 이를 어쩔 거나. 내일 수술이 끝나고 나면 머리카락이고 뭐고 아파서 정신이 없겠지. 하지만 머리카락의 소유자인 나는 그 후에 이 난감한 헤어스타일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할 입장이다. 만지면 거칠거칠 손끝에 느껴지는 머리카락이 낯설다.


저녁때 내일 수술 준비를 위해 이비인후과에 갔다. 외래진료가 끝나고 북적북적거리는 사람들이 없는 낯설고 추운 긴 복도를 걸었다. 수술할 구멍을 정확하게 표시하기 위한 염색약을 넣었다. 약 3cm 정도의 깊이. 대단한 깊이의 구멍이다. 이때까지 이리 큰 구멍을 가지고 살았구나. 용케도 살았다.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저녁이 와 있었다. 식어버린 잡채 덮밥이었다. 불어 터진 잡채. 맛이 하나도 없었다. 예쁘지도 않았다.


갑자기 깎인 머리도 낯설었고 염색약을 넣느라 아팠고 저녁밥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래 저래 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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