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TV가 없다. TV가 있고 없고는 병원마다 다르겠지. 대신 병실 맞은편의 자그마한 휴게실에 TV가 있다. 휴게실은 이쪽 성형외과 병동에서 들어갈 수도 있고 저쪽 이비인후과 병동에서 바로 들어올 수도 있는 구조이다. 벽 한쪽에는 텔레비전이 매달려 있고 맞은편에는 의자가 대여섯 개 나란히 놓여 있다.
텔레비전 아래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는 책들이 놓여 있다. 병원 생활을 하는 아픈 환자들을 위한 맞춤 책들이다.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책들이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나란히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힘을 내서 잘 살아 봐야지. 어떤 게 위로가 될는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어. 마음에 끌리는 쪽을 선택해 봐. 둘 다 살펴봐.
부처님과 예수님.
둘 다 다른 삶을 살고 약간의 차이가 있는 종교의 중심에 있는 분들이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한 위대한 분들이기에 아직까지도 두 분의 말씀이 숨 가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다. 그러기에 비슷한 면도 있다.
부처님은 말한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을 부처 대하듯이 하라. 예수님은 말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과 어울려 잘 살아라. 두 분 다 타인들과 잘 사는 것을 말한다. 타인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것. 그것이 평온한 삶이다. 그리고 그 전제는 당연히 '나'이다. 나의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 나를 사랑하라. 내가 먼저 행복하라.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타인을 사랑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 자신부터 잘 챙겨라.
배선실이 있었다. 이름만 들어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얼핏 들여다보니 식사를 하고 난 다음 식판을 가져다 놓는 곳이었다. 환자와 간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고 가는 곳이기도 했다.
할머니 두 분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댁의 할아버지는 이번이 항암 몇 차? 수술은 예전에 했는데 이번에 다시 재발해서 7차. 우리는 12차. 아이고. 간혹 탄성이 이어지며 할아버지들의 증세와 경과를 묻고 답한다.
50대 정도의 딸 둘이 서로의 휴대폰을 보며 내일은 내가 오고 모레는 네가 올래? 일정을 조율한다.
병원에서 환자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가슴에 보호자의 명찰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여자들이다. 아무래도 사회 구조상 돌봄의 역할은 여자들이 주가 된다. 그럼 여자가 아프면? 글쎄 할아버지, 아들, 사위들이 할 경우도 있겠지만 병동에서 보기 힘들었다. 케어가 필요한 여자의 간병은 또 다른 어느 여자가 맡게 된다.
남아시아 계통의 까무잡잡한 피부의 키가 작은 여자 보호자가 있었다. 20대에서 30대 초반 정도. 아무리 많아도 40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간병인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입원 기간 내내 눈에 띄었다. 배선실에서 간혹 만났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었다. 전자레인지에 덮밥을 데우고 있었다. 어느 날은 컵 누룽지를 들고 있었다. 삼시 세끼를 그렇게 간편식으로 때우고 있었던 것일까? 제발 자신을 먼저 잘 챙기고 다른 이를 챙겼기를 바란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자신을 먼저 돌보고 사랑하라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