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고 보니 엉덩이 배숙

감기야 날아 가라

by 미르

남편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날이 그리 춥지 않은 부산이지만

거센 바람과 합쳐진 날씨는

한겨울에 체감온도가

영하 19도일때도 있습니다.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조차

오륙도 바위에 부딪치다가 업니다.


서울보다 춥다고

부산의 날씨를 말해 주는 리포터가

말을 합니다.


흩날리는 눈 한 송이도

보지 못하는 부산이

이런 기온이라니.


눈과 겨울을 보내는

위쪽 지방 사람들은

과연 이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요?

저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추운 겨울 날씨를 뚫고 출퇴근하던 남편.


어찌나 아팠던지

병원 가라 가라 해도 듣지 않던 사람이

글쎄 자기 발로

회사 근처의 병원에 가서

엉덩이에 주사 한 방을 맞고 왔습니다.


이런, 엄청 아팠나 봅니다.

뭔가 좋은 게 없을까?

냉장고의 배 하나를 꺼냅니다.


껍질을 깎아내고

등짝에 통후추를 박아 끓여

단정한 하얀 배숙을 만들 수도 있지만


껍질에 좋은 성분이 많다고 하니

통째로 먹을 수 있는

약 비주얼의 배숙을 만들기로 합니다.


배의 머리 부분을 과감히

댕강 자릅니다.

뚜껑으로 다시 사용하니

고이 모셔 둡니다.


이제 어려운 부분 들어갑니다.

남은 배가

동그란 예쁜 배를 닮은 그릇이 되게

속을 팝니다.


어렵습니다.

큰 칼, 작은 칼, 포크, 숟가락

다 동원합니다.


끙끙 영차영차

그럴듯한 동그란 그릇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쉽습니다.

파낸 배의 속을

뽀얀 속살을 다시 분리해서

배그릇에 다시 넣습니다.


냉동실의 요리용 생강,

대추 몇 알도 넣습니다.


그 위로 황금빛 꿀의 염원이

뿌려집니다.


감기야, 물러가라.

자, 이제 거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해야겠군요.

배의 속을

숟가락으로 열심히 파다가 알았습니다.


제가 머리라 생각하고 잘랐던 부분이

머리가 아니었습니다.

배의 엉덩이 부분이었습니다.


파다 보니

배의 엉덩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꼭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급히 잘라 놓은 배의 엉덩이를

보았습니다.

이런 엉덩이군요.

엉덩이인가?


어떻게 보면 엉덩이 같기도 하고

엉덩이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일단 꼭지가 있는 쪽이 머리가 확실하니

엉덩이가 확실하군요.


어쩌겠습니까?

다시 엉덩이를 붙일 수도 없고

머리를 다시 자를 수도 없고.


그냥 그대로 진행합니다.

찜통에 얼마나 쪘을까?

대략 오랜 시간 동안 쪘습니다.


온 집안에 생강의 향이 퍼지고

후끈한 공기가 퍼집니다.


뜨거운 수증기에

숨이 팍 죽은

영양 가득한 갈색의 약 비주얼

배숙이 완성되었습니다.


허준 선생님이 보셨으면

흐뭇해하셨을 것입니다.


완성된 배숙의 얼굴은

엉덩이 같지 않고

더욱더 멀쩡한 얼굴 같아 보였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남편에게 대령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

얼굴이다 얼굴이다.

약이다 약이다.

먹고 낫는다 낫는다.

주문을 외웁니다.


아무튼

엉덩이에 맞은 강력한 주사 때문인지

배 엉덩이를 보며 먹은 배숙 때문인지

감기는 물러갔습니다.


추운 날씨에

감기로 고생하는 사람들,

시간 나면

배숙 한번 만들어 드시고

감기 뚝 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배의 엉덩이 사진을

올릴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감히 배의 수줍은 노란 엉덩이를

보여도 될까 싶었습니다.


고민을 하다

과감히 배의 엉덩이를

살짝 보여 드리겠습니다.


어멋,

저는 그런 거 부끄러워요 하는 분들은

스크롤을 내리지 마시고

살짝 나가기를 바랍니다.


자,

배의 엉덩이 나갑니다.


하나,


둘,


셋!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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