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에 청원피스의 긴 머리
뉴 페이스의 선생님이 다가와서
직책을 밝히고 말을 건다.
(몇 달 다니다 보니
선생님들의 옷차림이
비교적 자유분방하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라는 배경만 지우고 보면
생기발랄한 자신의 나이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출근한 지 몇 달은 되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니 횟수로는
10번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주변의 몇몇 낯익은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나에게는 뉴 페이스.
생활 어쩌고 하는 긴 이름의 직책인데
알고 보니 스케줄 담당 선생님.
12월 긴 휴가를 가는 영어 선생님 대신
수업이 가능한지 물어본다.
'당연 가능합니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출근을 한다.
이 소식이 휘리릭 온 교무실을 돌았나 보다.
다음 쉬는 시간에 만난
교무부장, 학습부장 선생님이
차례로 수업을 맡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입시가 일찌감치 끝나서
높은 하늘로 둥둥 떠다니는 3학년들의 마음을
영차영차 지상으로 끌어당기기로 마음먹는다.
스티브 잡스님,
헤르만 헤세님,
파울로 코엘료님,
오프라 윈프리님.
함께 학생들 마음을 잡으러 가 봅시다!
오늘의 수업 내용은 현재 완료.
과거의 일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다.
우리의 스티브 잡스님이 등장.
Connecting the dots.
과거의 점들이 돌아보니 현재와 연결되더라.
교실에 잠시 자기 계발강사가 강림.
스탠퍼드 졸업식 축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으쌰 으쌰하고 무사히 성공적으로 빠져나오는데
다른 영어 선생님의 멘토도 스티브 잡스라 한다.
아, 영어선생님들은 스티브 잡스를 참 좋아하는구나.
그러면
다른 과목 선생님들의 멘토는 누구일까?
국어선생님들은 세종대왕을,
역사선생님들은 이순신을 좋아할까?
잠시 엉뚱한 생각에 빠진다.
학생들은 으쌰으쌰의 시간이 지나고
잠의 신에게 굴복한다.
아니 내가 잠의 모래를 마구 뿌려대는
마녀라도 된 듯하다.
잘 자거라 잘 자거라
이런 주문 없이도
팔을 책상 위에 올리고
머리를 그 위에 올리고 편안히 잔다.
이 잠 많은 학생들.
하지만 단순히 잠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수업 끝나는 종소리는 귀신처럼 듣고는
부스스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나의 수업이 수면제가 맞나 보다.
이런 경쾌한 귀를 가진 녀석들.
미스터리 하다.
나는 지금
자기 계발 강사인가 마녀인가?
어느 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