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 감기.
짧고 바쁜 아침의
비교적 긴 머리 말리기의 시간.
그동안 남편이
어제저녁에 내가 끓여 놓은
미역국을 데우고
달걀 프라이 2개를 굽고
냉장고의 밑반찬을 꺼낸다.
차려진 식탁으로 입장.
아침 식사.
늘 챙겨 주는 입장이었는데
이렇게 챙김을 받는 아침.
이렇게 하루가 시작될 수 있구나.
그 느낌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일방적인 관계보다는
서로 챙겨주는 사이.
인간관계의 기본이지만
가족 내에서는 소홀해지기 쉽다.
너무 딱 붙어 있어서
보이지 않는 그 틈을 살짝 벌려
살랑살랑 바람이 드나들게 한다.
나도 시원하고
너도 시원하다.
이렇게 틈을 좀 찾으며 살아 보자.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어젯밤에 싸 놓은 백팩을 다시 확인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작은 usb 한 개면
준비물은 끝.
하지만 부족한 마음에
책이랑 이것저것을 쑤셔 넣는다.
2교시 수업이니 나의 첫 수업.
좀 느리게 가도 되지만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기쁜 일이라
좀 이르게 출발.
아침의 지하철은
각각의 일터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대낮의 느긋한 분위기의 지하철과는
확연히 다르다.
촉촉이 젖은 머리를 가진 채로
완벽한 화장을 하고
운 좋게도 좌석에 앉아
눈을 잠시 감고
전날의 흔적을 지우는 사람들.
낮에는 많이 보이지 않던
앞으로 백팩을 멘 사람들.
빽빽한 그들 틈에
나도 백팩을 앞으로 메고
함께 영차 오늘을 위해 나아간다.
환승역.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이는 물결,
에스컬레이터 속으로
감히 끼어들어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계단으로 움직이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오르내리지만
내가 내 발로 내디뎌 나아간다.
학교로 가는 길.
길가의 노란 나뭇잎 사진을 찍는다.
시간이 아직 이르니 꽃을 보듯
나뭇잎의 얼굴을 찬찬히 볼 수 있다.
나뭇잎도 꽃처럼
화려한 얼굴을 가질 수 있다.
학교 앞의 작은 횡단보도 앞.
학생들의 뒤를 천천히 따라간다.
교통정리를 해 주시는 모범택시 운전사 아저씨들.
어서 오라고 하는 손짓에
거북이의 느린 발걸음은 냅다 버리고
저도 모르게 뛰어간다.
뿌듯해하며 웃는 얼굴에
감사의 인사를 기쁘게 한다.
"감사합니다."
(저, 실은 다음번에 건너고 싶었지만
학생들과 저를 위해서
바쁜 자동차들을
몇 대나 멈춰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거북이가
잠시 재빠른 토끼가 되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프린터에 인쇄를 맡기고
차를 한 잔 마시며
전쟁으로 뛰어들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수업이 끝난 뒤
같이 퇴근하는 옆자리의 기간제 선생님과
룰루랄라 건물 밖으로 나온다.
(학교에는 알고 보니 교사의 종류가
참 다양하더라.
같은 교무실을 사용하지만
정교사뿐만 아니라
기간제 교사, 시간 강사,
기초학력 지원 강사, 방과 후 강사들이
다 섞여 있다.
아마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교사들이
교무실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런,
비가 내린다.
다시 교무실로 돌아가서
여분의 우산을 빌린다.
풍부하고 차고 넘치는 시대인 걸까?
교실에도 교무실에도
주인 모를 우산들이 가득가득.
초등 아니 국민학교 1학년,
그때쯤에 처음으로 가지게 된
나의 작은 땡땡이 물방울 무늬의 보라색 우산.
노란색 곰돌이 손잡이도
아직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지금 우산의 주인들은 자신의 우산을
어디에 두고 왔는지
기억이나 할까?
빌린 우산을 받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일주일에 한 번
기초학력 지원강사로
이르고 느긋하게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