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지피티!

대화할 준비가 되었어?

by GQ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지피티를 써야 할지 고민이다.

언제부터인가 지피티 없는 일상을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

검색엔진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그냥 했던 일들도 이제는 부러 지피티를 쓰게 된다.




인공지능이 대세인 세상에 살고 있다. 아니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금 일하는 환경 속에서 갇혀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IT 교육회사에 다닌 지 얼마라고 매일의 머릿속에 인공지능이 떠나지 않는다. 지피티 찬양론자가 되었다고나 할까. 만나는 사람마다 지피티 이야기를 쏟아낸다. LLM이 어쩌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어쩌고, 업무 자동화가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지피티가 바꾼 삶은 대화의 주제만은 아니었다. 버킷리스트 담아놓고 마냥 꿈꿔왔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대략 1980년대 후반부다. 난생처음 컴퓨터 학원이라는 곳을 가게 됐다. 286 컴퓨터라고 있었다. 녹색 화면의 모니터, 당연히 윈도우도 없고, 마우스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컴퓨터 언어 공부를 공책에 써가며 배웠다. 순서도를 그려가면서 GW-BASIC을 공부했다. 배워서 뭘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오늘은 input, 다음주는 read-data를 자판 꾹꾹 눌러서 배웠다. 사실 그때는 그 컴퓨터 학원을 왜 다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컴퓨터 오락이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집에도 컴퓨터가 있었다. 286-AT. 당시에는 고급사양이었다. 모니터 화면도 흑백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아직도 플로피디스크를 쓴다는 웃픈 기사가 있었다. 플로피디스크. 아마 MZ들에게는 박물관 유물 같은 존재리라. 13.335cm.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페르시아의 왕자를 돌리려면 디스크 여러 장을 갈아 끼워야 했다. 나의 286-AT는 사칙연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오락뿐이었다. 그렇게 추억의 컴퓨터는 오락기였던가. 언제 없어졌는지 기억도 없이 사라졌다.


(아직까지는) 지금의 회사. 개발자를 양성하는 회사였다. 개발이라, 까만 화면에서 알 수 없는 영어들이 나열돼 있는 그런 화면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회사였다. 개발은 관심을 떠나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그들의 대화는 그냥 신기할 뿐이었다. 하는 일조차 비개발 직군이기 더욱더 노관심의 영역이었다. 아련한 기억속에 나도 한 때는 프로그래머를 꿈꿨었는데.


지피티를 쓰면 편하네, 좋네, 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인공지능이 가능해? 라며 애써 무시했다. 여전히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네이버였고, 구글이었다. 구글링 속에 삶의 모든 정보와 지식이 있다고 믿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주변 환경이 그러니, 들리는 이야기도 많았다. 한번 써볼까.


'쓸만하다'

는 말을 믿고 지피티를 처음 쓴 것은 2023년 겨울 무렵이었다. 첫 질문은 기억나지 않고, 실망했던 기분만 남았다. 묻는 말에 제대로 답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럴 싸했다. 그런데 써먹지는 못하겠다. '야마'없는 글, 거슬리는 번역투, 종잡을 수 없는 톤앤매너까지 지피티에게 등을 돌리게 했다.


그냥 대화창이니 이 친구와 대화할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못했다. 프롬프트를 배워야 한다는데, 이것도 이름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다. 개발자들이 하는 것인가보다 했다. 역할을 부여하고 질문을 구체화하고 어쩌고 하는 프롬프트 작성법도 그저 번거로운 절차였다. 여전히 키워드만 입력하면 되는 네이버가 더 쓸만했다.


'쓸만하다'

는 생각이 든 것은 지피티4를 만나서였다. 물어보는 족족 제법 그럴싸한 답을 내놨다. 바로 써먹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는 구석이 있었다. 때마침 시작된 파이썬 공부. 지피티는 나의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바야흐로 지피티에 눈을 순간이었다. 그 어떤 질문에도 대강 그럴싸한 답을 해주는 백과사전 같은 존재가 생겼다. 똑같은 질문을 백 번 해도 싫다는 소리를 안 한다. 내가 화를 내면 "I apologize...." 어쩌고 한다.


파이썬은 같은 프로그래맹 언어는 작은 오류로도 작동이 안된다. 강의로 배운 것을 복습하면 중에 오류가 생기면 사실 딱히 해법이 없었다. 열심히 구글링해서 고쳐보지만, '{', '[', '('중에 무엇을 넣어야 할까 모르겠다. 시뻘건 글자들이 화면만 가득 채웠다.


하지만, 지피티를 만나고 바뀌었다. 고민이 없다. 시뻘건 글자를 긁어서 물어본다. "이 오류는 왜 나온지?". 나의 파이썬 친구는 성심을 다해 설명을 하고 새로 코드를 만들어준다. 그렇게 복붙의 반복이 지나고 나면, 원하는 답이 나온다. 내가 한거라곤 복붙 뿐이었지만, 뿌듯하다.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재미삼아 이것저것 만들어본다. 검색을 위한 생각과는 또 달랐다. 무지에서 출발해도 두렵지 않았다. 잘 묻기만 한다면, 목적한 바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답을 찾기에 앞서 답을 찾는 과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지피티에게 어떻게 물어야 할까. 정교한 질문에 대해서 골몰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어설프게 알 던 것들에 대해서 보통 수준의 지식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아는 척' 하던 것들이 '아는 것'으로 조금씩 바꿔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개념 관련 정보들은 구글의 검색이 시간이 적잖이 걸린다. 누가 썼는지 알 수도 없는 블로그 글들의 정보를 신뢰해야 하는 위험이 상당히 없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지피티는 의심스럽다. 그럴때는 지피티의 친구들, 제미나이와 클로드에 검증을 맡긴다. 지피티의 답에 '가혹한 비판'을 요청한다. 논리와 정보가 가다듬어지고 고도화 되는(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됐다.


무지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질문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뭘 모르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모르는 게 뭔지를 아는 것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다행인 것은 나의 무지함을 지피티만이 안다는 것이다. 무지에 대한 비난이 두려워 주춤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처음부터 설명해달라는 프롬프트가 익숙해져간다. 무지에서 지식을 어떻게 쌓아갸할지에 대한 로직을 고민하는 새로운 사고의 영역이 열렸다.


창작과 배움의 욕구가 올라왔다.

어설프게 시작한 개발 공부는 지피티가 없었다면 그저 상상 속의 일이었을 것이다.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실습을 했는데, 오답이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구글링을 하거나 포기하거나 했을 것이다. 다행히 구글에서 답을 찾으면 횡재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은 없다. 뭔가 전문가(스럽게) 답해주는 지피티가 있기 때문이다.


겁없이 도전을 시작했다. 파이썬에서 출발한 개발공부는 웹개발 전반을 지나, 생성형AI에 대한 이해, 업무 자동화까지 다방면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수박 겉햝기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매일 한다. 업무에 써먹을 수 있는 것부터 만들어보자. 그리고 내가 가장 오랜 분야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스스로(w. 피지티) 프로젝트를 설계해 본다.


좋은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질문만 하다 보니, 정작 답은 뒷전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엄습해 온다. 답을 위한 과정을 고민했던 시기에서 답을 위한 질문의 시기로 넘어오면서 생각의 길이가 짧아지고 있다. 모르면 물어보자는 대명제를 너무 과하게 실행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회고도 한다.


3초 정답같은 지피티의 답을 일일이 고쳐야 하는 또 다른 번거로움이 생겼다. 짜깁기 한 글들을 재정리하다 보면, 그냥 내가 쓸걸 하는 생각도 든다. 가끔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똑같은 오답을 반복하는 지피티와 상당한 힘겨루기를 하기도 한다.


간편해진다는 것은 또 다른 불편함을 위한 시작이어야 한다.

이게 아직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지피티 강의를 하면서 가장 먼저 "자동화로 생긴 빈 공간을 인간의 창의력으로 채워야 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우리가 지피티를 배우는 목표가 편해지려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 말은 지피티로 자동화되면 사람부터 잘라야지 하는 어리석은 사장님들을 위해서 만든 말이긴 하지만, 곱씹을수록 맞는 말 같다.


"안녕 지피티 , 대화할 준비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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