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을 안주면 진상고객일까 상도덕 위반일까
해외에 살다가 몇 년에 한번씩 한국에 방문할 때 편안해지는 것은, 고국의 '품'안에서의 익숙함이나 모국어의 편안함뿐만이 아니다. 바로 팁 걱정없는 홀가분함도 한 몫 한다고 본다.
캐나다에서는 팁 부분이 상식에 속하는, 특별히 서비스에 대해 만족과 감사의 표시가 아니라 그냥 의례히 주게되어있는 부분으로 알고있다.
그런데 캐나다는 세금이 13%이기 때문에 가령 음식값의 경우 메뉴에 표시된 음식값에 13%의 세금이 붙고 여기에 팁이 얹어지는 것이다. 처음 캐나다에서 살기 시작할 때 이 지점이 참 편치 않았다. 온라인 이민자 까페에서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하는게 적절한지에 대한 '팁'을 공유한 글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 적정선에 대한 합의(?)는 이랬다. 음식값, 즉 세금붙기 전 순수 음식값의 15%, 세금 붙은 후 값의 10%.
예쩐엔 카드로 지불할 경우 리더기에 퍼센트를 손님이 직접 입력하거나 현금으로 입력하게 돼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세금후 값의 13%를 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팁에 관해 한 일화가 떠오른다. 어느날 한 한국음식점에 갔을 때 팁 주기가 너~~무 싫었던. 팁을 안주면 야박하기 이를데 없는 '인생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할 진상고객이 되는걸까.
그때 김치찌개, 감자탕, 돈까스, 깐풍기를 주문했는데 깐풍기는 뼈가 있어서 프라이드 양념치킨과 다를게 없었고 바삭하지 않은 돈까스, 신김치로 끓이지 않은 기름만 둥둥뜬 괴상망칙한 맛의 김치찌개, 거뭇거뭇한 껍질을 벗기지 않은채 넣은 감자탕속의 설익은 감자, 쌀알의 형체가 뭉개진 떡밥.
나는 평소 한국음식점 가기를 이런 이유로 꺼리는 편이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또 맛이 없었다. 잠시 딴 이야기를 하자면 왜 해외에서의 한국음식점은 맛이 없을까. 위의 메뉴를 보면 짐작이 가리라. 본토에서라면 한식집 메뉴와 중식집 메뉴. 일식집 메뉴가 이곳에서는 대개 다만 '한국음식점'안에 다 있다. 요즘 세계에서 한식이 인기있다던데 그들은 처음부터 그런가보다 하고 맛있게 먹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미 제대로 된 맛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도무지 만족스럽게 먹기 어려운 노릇을 많이 겪었다.
식사를 하면서 대화의 대부분은 '맛이 해도 너무한다'를 이루었고 결국 팁을 주느냐 마느냐를 두고 소곤소곤하며 식사를 마쳤다. '노팁'을 결심하고 계산대에 갔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맛있게 드셨냐고 묻길래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라고 했더니 어떤 부분이 그러냐고 해서 조목조목 대노라니 주인왈, 원래 감자는 벗기는게 아니고 밥은 하다보면 가끔 그렇게 되고 등등의 납득안가는 해명뿐이었다.
카드 기기를 들고 잠시 갈등하다가 과감하게 팁의 공란에 과감하게 '0'을 눌러버렸다. 주인 앞에서 낯이 뜨거웠지만 할 수 없었다. 진상이 되더라도 이건 내 양심이라고 여겼다. 미식가는 아니나 한국에서 수십년 살아 한국음식맛의 기본은 아는 미각인데 이런 맛을 감히 '한국음식'이라 내걸고 있는 꼴을 묵과할 수 없다... 생각하면서 미안하다고 하고 나왔다.
그때 나에게 불쾌했을 그 음식점 주인은 자기들 음식맛에 고민하기보다 같은 한국사람끼리 너무하네, 외국에 나와살면서 캐나다식을 따라야지 한국사람들 참 매너없어...하면서 나를 욕했을지도 모른다. 팁 너무 주기 싫을때 안주는 것도 권리일까? 아님 상도덕에 위배되는 파렴치한 행동일까? 지금도 답을 모르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카드기기가 여기저기에서 새 것으로 교체된 것을 느끼게 됐다. 전에는 손님이 직접 입력하게 돼있었는데 이제는 딱 선택하라고 나온다. 그런데 가만보니 선택할 수 있는 퍼센트가 올랐다. 15%, 18%, 20%, 그 다음은 아마도 25%쯤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점이 사라진 것에 당황스러웠다. 이것은 당연히 세금붙은 후의 퍼센트이니까 이전까지 내가 고수해오던 기준은 사라진 것이었다.
고객이 직접 입력하는 선택은 여전히 유효하니 그렇게 하면 되는데 사람 심리가 그렇게 안되었다. 그 부분에서 뜸을 들이고 제시된 것보다 더 낮추는 것은 왠지 '지금 때가 어느때인데...'하는 눈총을 받을까 개운치 않은 마음때문에. 아, 나는 왜이리 팁에 익숙해지지 않는가 하며 탄식이 나올정도.
그런데 어느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런 것에 대해 다루는 기회에 알게됐다. 나만 팁에 마음 불편한게 아니라는 것과 나는 사람들이 보통 주는 것보다 더 짜게 주어왔다는 것을. 사람들도 그 높여진 퍼센트로 고르라고 강권하는 방식에 거부감을 가지면서도 첫번째 선택, 즉 젤 싼것을 선택하면 왠지 자신이 '쫀쫀한' 고객이 되는것 같아 두번째, 18%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가서 음식점을 가면 음식값에 13%가 턱 얹어지는 것도 없고 거기에 또 얹어지는 팁이 없어서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모른다. 두고봐야 알겠지만 어쩌면 한국도 이 팁 걱정을 해야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진출처. 서울경제신문)
그렇게 된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우려스러운게 있다. 캐나다의 경우 팁의 금액을 종업원 수에 똑같이 분배한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그것까지 정착이 될 것인가 하는 부분때문에. 공연히 팁을 핑게로 기본임금이 낮아지고 팁으로부터 분배가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팁이 다르게 골칫거리가 될 수 있어서다.
세상은 어디가 됐든 이래저래 점점 피곤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에 입맛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