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빨의 효능 vs 욕빨의 부작용
몇 년 전 한국에서 살 때, 집에서 멀지 않은 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참을 가다 쉬고 있는데, 한 꼬마 아이가 다가와 큰아이에게 물었다.
"몇 학년?" "5학년"
"난 3학년인 줄 알았네" 하더니 연신 종알종알 댔다. 잘못 크면 푼수겠지만 지금으로선 붙임성 좋은 녀석이다 하며 멀어져 갔는데, 그 후 그 녀석을 몇 차례 더 마주쳤다. 알고 보니 녀석은 깐죽도 상당해서 마주칠 때마다
"어? 3학년 같은 5학년이다." 어쩌고저쩌고
"3학년 같은 5학년 형아가 벌써 쉬네" 어쩌고저쩌고.
세 번째쯤 마주쳤을 때 쟤 엄마는 쟤 키우면서 짜증 나는 일 많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큰아이 옆에서 알짱거리던 녀석이 어느 순간 얼굴 표정이 살짝 굳은 채 입 다물고 멀어져 가는 게 보였다.
큰아이에게 다가가 "쟤 왜 저러니? 뭐랬길래 그냥 조용히 가는 거야?" 하고 물어보니,
거두절미하고 사자성어로 간단히 끝내버린 셈이었다.
꺼. 져. 시. 발.
평소 같으면 욕은 안된다, 욕을 써 버릇하면 어디서나 튀어나오게 마련인 거다 등등 한바탕 훈계를 늘어놨을 법한데 이번만은 때론 효과적이네 싶었다. 이어지는 큰아이 왈, "그러니까 욕빨도 있어줘야 하는 거야"
아, 그럴 수도...
날로 거칠어져 가는 아이들 세계에서 너무 순둥이 보담 '욕빨'이 좀 받쳐주면 자기 방어가 되는 걸까 그래도 욕은 아닌 걸까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다.
그로부터 수년 후 캐나다에 살고 있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 아이 데리고 외출할 일이 있어 준비하는 중에 아이가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보니 어떤 아줌마가 진지한 분위기로 아이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 있는가 싶었는데 문을 잠그고 나서 가까이 다가갔을 땐 그 아줌마는 자기 차에 올라타고 떠나는 중이었다. 차에 타서 흘깃 본 아이의 기색이 영 좋지 않아 무슨 일이냐 물었다. 사연인즉,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자아이들 몇 명이서 눈을 발로 차 던지는가 하면 길을 막고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놀리곤 했었단다. 그날도 그랬는데 너무 성가셔서 영어 버전으로 '욕빨'을 발휘한 것.
"I don't fxxking care."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을 간단히 끝냈는가 싶게 아이들은 곧 사라졌지만, 잠시 후 그 엄마가 찾아온 거다.
아이로선 얘기가 길어지기를 원치 않아 fxxk 말고도 자기가 하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으며 하는 훈계를 그냥 고분고분히 듣고 미안하다 하고 보냈는데 보내고 나서 점점 분하고 억울해진 거다. 그럴 땐 죄인처럼 굴 필요 없고 사과할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사과를 해야 하지만 부당하게 느껴진다면 예의는 보이면서 할 얘기를 해라 하고 얘기를 해줬다. 한국에서야 '어디 돼먹지 못하게 어른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거냐' 거나 '어디 배워먹지 못한 게 어른 앞에서 꼬박꼬박 말대꾸야'가 날아올 테지만 캐내디언 스타일은 다르다고 들었기에.
이 일을 계기로 애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얘들아 캐나다에선 니들이 말하는 욕빨이 안 통하는가 보다. 사소한 욕 한마디로도 괜히 다 뒤집어쓰는 수가 있으니 대단찮은 욕 몇 마디로 괜히 욕빨이 선다는 생각일랑 아예 말거라." 대신 한국에서든 캐나다에서든 논리적인 '말빨'은 좀 있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남녀 간 세대 간 직급 간 상관없이 말의 내용만 가지고 대화가 가능하다는 전제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