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밤잠 못이루는 사람들은 많다. 나이트 근무하는 간호사의 소박한 바람은 밤새 죽 이어서 푹 주무시는 환자들이다. 섬망증세 등으로 침대에서 떨어지는 경우, 잠이 안온다고 걸어 나와 돌아다니고 막 밖으로 나가려 드는 경우, 통증때문에 잠에서 깨는 경우 등등 다양도 하다.
M은 라운지에 나와 앉아 거의 매일 'OOO갓 탤런트'류의 프로그램을 밤새 시청하는 사람이다. 듣기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는 속담도 있는터에 오며가며 밤새도록 '지르는' 출연자들의 열창을 듣노라면 시큰둥을 넘어 시니컬해진다. 아, 당신들 노래 잘해, 정말 잘해. 어쩌라고...가 된다.
또 다른 M은 드라마파. 아시안인 그는 네플릭스에서 주로 아시안 드라마를 즐기신다. 역시 오며가며 흘깃 보게 되는데 그날은 어? 하고 다시한번 쳐다보게 되었다. 남궁...민 아닌가? 하면서 잠시 티비 앞으로 다가가 멈춰서 있었더니 조금 있으니 전여빈이 보였다. 영화 '하얼빈'에서 인상깊었던 그녀가 여기서는 어리버리한듯 하면서 밝고 순수한 캐릭터로 보였다.
오래 머물 순 없고 오며가며 그러다가 잠깐씩 머물면서 띄엄띄엄 '우리영화'를 시청하게 됐다.
그중 한 장면이 내 관심을 끌었다.
다음이 촬영 전 날 대본 연습을 하다가 약병을 꺼내 약을 먹고 테이블 위에 놓아두는데 누군가 방문을 했다. 뜻밖의 인물인 서영이 들어와서 묻는다.
서영 : 이거 무슨 약이야?
다음 : 아, 이거...
서영 : 아 소품약이네
다음 : 네 영양제들 넣어놨어요. 비타민들.
서영 : 비타민, 그럼 나 이거 하나 먹어두 돼?
다음 : 안돼요.
서영 : 병원에 얼마나 오래 있었길래 세상 물정을 몰라. 심지어 성의까지 없어.(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이때 문밖에 이번엔 이제하 감독이 찾아왔다.
이제하 : 괜찮아요? 괜찮냐구요
다음 : 네 괜찮아요.
이제하 : 네가 도대체 여길 왜...
서영 :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인데?
이제하 : 그러구 또 뭐. 더 있잖아 물어보고 싶은 말
서영 : 물어보면 대답할 순 있구. 서로 둘이 얼굴을 좀 봐 까놓고 얘기한번 해보자. 다음씨 처음으로 oo씨 불렀던 날 소리지르며 발작 일으켰어. 내가 병원 데리고 갔어. 응급실에서 기다리는데 의사가 오더니 신경쓰지 말래. 어디가 아픈건지 얘기도 안해. 돌아가래. 황당하지. 병원 데려간 보호자는 난데.
다음 : 선배님 그거.
서영 : 그건 그렇다 친지 오래됐어. 그리고 다음, 우리가 만난 건 다음씨가 의사가운을 훔쳐 입고 탄 엘리베이터 안이었어. 간호사가 이다음씨를 찾았구 나는 언니인척 연기를 하면서 거길 같이 빠져나왔지. 그리고 우리집에 갔구. 감독님이 도로 데리고 갔구. 이젠 설명을 해줘야 될거야. 도대체 왜? 도대체 뭐길래?
다음 : 선배님, 나 죽냐고 물어봤죠? 네, 진짜 죽어요. 저 시한부예요.
서영의 당찬 추궁과 다음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 이해가 안됐다. 서영은 왜 알아야 한다는건가? 왜 설명을 요구하는건가? 극중에서 의사가 서영에게 이렇다 할 설명을 안하는 건 다른 상황같지만, 현실에서, 병원에 데려온 사람이라고 의료진이 그 사람에게 설명을 할 의무가 없을뿐 아니라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설명을 할 수 없다. 환자의 정보 유출은 처벌대상일걸. 따라서 이는 서영의 무지, 혹은 착각, 나아가 오지랖되겠다.
도움도 줬고 우연히 여러번 마주친 상황에서 궁금할 순 있다. 그런데 상대가 이야기를 먼저 안하면 할 수 없는거지, 마치 많이 참아줬다는듯이 '이젠 설명을 해줘야 될거야. 도대체 왜? 도대체 뭐길래?' 하고 (쳐)묻는 건 무슨 경우인가? 띄엄띄엄 시청으로 확실하지 않지만 극중 캐릭터가 돼먹지 않는 것으로 설정된 것 같지는 않았는데.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환자의 이름과 약 이름이 표기된 약봉지를 버릴 때 일반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놨다가 약국에서 수거해 간다, 상자같은 곳에 환자의 이름과 약 이름이 같이 표기돼 있으면 반드시 오려내거나 안보이게 빡빡 지워서 버리게 돼있다. 복용하는 약은 곧 병의 노출이기 때문에.
방문한 가족이 환자가 복용하는 약에 관해 문의하거나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 묻더라도 환자에게 법적으로 위임받은 특정인(Power of Attorney)이나 환자 대신 결정권(Substitue Decision Maker)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절대 제공할 수 없게 돼있다.
간호사로서 직업상의 관점은 차치하고라도 서영의 태도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엔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을 거침없이 물어대는 불편한 습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 개인의 건강에 대한 정보는 더욱 보호하고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띄엄띄엄 보면서 눈에 들어온 장면 하나 가지고 이렇게 말이 많으니 이 드라마 처음부터 보면서 남궁민의 매력에 푹 빠지는 일은 애초에 글렀다고 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