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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환자 더 이상한 간호사

by 오리진

내가 널싱 홈, 또는 시니어 커뮤니티라고도 불리우는 시설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치료적 관계(theraputic relationship)'이다.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환자와 간호사의 진정성있는 관계는 늙고 병들어 취약한 생애 주기에 있는 그들의 안정적인 일상은 물론 자아존중감에 중요하고 그것은 곧 삶의 질에 있어서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들 각자와 그런 좋은 '치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나의 원칙은 바로 개별성이다. 그들 각자는 모두 다르고 누구나 자신의 생애를 거쳐온 만큼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라는 점이다. 각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이야기는 훌륭한 이야기가 따로 있지 않다. 허구로서 만들어낸 이야기에는 온갖 요소를 기술좋게 버무려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현실을 살아온 평범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견디고 버티고 지나온 것만으로도 무언가 존엄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노년에 들어 치매같은 병으로 인해 그들 본래의 인성과는 다른 이상 행동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한평생 형성되어온 인성이나 성격, 가치관, 기호 등을 그대로 가지고 노년에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세상에 별별 사람이 많다고 할 때 늙고 병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에도 별별 사람이 많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70대의 리디아는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애쓰는듯 별났다. 식사도 식당에 나와서 하지 않고 입소 초기 통상적으로 하는 검사들도 모두 거부하는 등. 처음부터 몇 달이 지나도록 그녀 마음에 드는 것은 하나도 없어서 늘 불만이 많고, 흑인 특유의 레게머리를 보고 '대걸레같은 머리'라고도 하는 등 인종차별주의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유독 줄기찬 불만대상은 음식인데 음식이 이름만 거창하지 순 엉터리라는게 그의 주장. 깡통 음식 사다가 준다는등 'ㄸ'같기 때문에 변기에다 버렸다고도 말한다. 만성통증이 있다면서도 진통제를 스케줄대로 복용하는 것은 한사코 거부한다. 어디가 안좋다고 해서 오더를 받아 약을 주면 이건 본적도 없어서 못믿겠다며 거부한다. 그녀의 고약한 성미는 점차 내 관심을 끌었다.


벨을 눌러 스태프를 오게 해서 간호사를 보자하고 내가 가면 진통제를 요구한다. 갖다 주면 그때 다른 약을 또 요청한다. 여러번 여러사람 왔다갔다 하게 하는 것을 알아차린 다음 번에 콜벨이 울릴 때 바로 갔더니 기분이 별로 안좋은 기색을 보고 나는 확실해졌다. 그녀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통제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의사와의 면담후에 몇 가지 약들이 주기적으로 복용되도록 되었는데, 정해진 시간에 내가 올 것을 알면서도 꼭 10분 전에 콜벨을 울려 자기가 요청하고야 만다. 10분 전에 콜벨이 울리면 나는 발끈하는 동시에 오기가 발동했다. 콜벨을 안하면 곱게 갖다주고 콜벨을 하면 일부러 다른 일을 먼저 한다음 조금 기다리게 했다. 전의에마저 불탄듯 결연하게 행동하는 나자신을 보고 알아차렸다. 그 사람만 이상한게 아니고 나는 더 이상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다른 동료들은 할일만 하고 그녀의 끝도없이 반복되는 불만엔 '신경 안써' 할 때, 나는 혼자서 열불냈다가 작전을 짰다가 그녀를 좌절시키고 이겨먹기 위해 내면에서 온갖 쇼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왜 그럴까. 과거 나르시시트로부터 고통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민감했던 것이라고 느꼈다. 그 경험으로 인해 나름 학습이 되었기에 다시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한터에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작전은 그녀의 불만중 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해주고, 할 수 없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음을 단호하게 말하고 듣기를 사양하기, 해당 매니저에게 토스하기, 관할 정부 부서 신고 전화번호 주기. 약 주는 시간에 대면할 때 또 시작할라치면 '전화번호 가지고 있죠? 신고하세요~'하고 얼른 나와버렸다. 한동안 잘 되는 것 같았다. 나를 보면 이렇다 할 시도(?)를 하지 않고 가끔은 흰소리도 했다. '너 메이컵 했니? 왜 오늘 예빠보이는 거니?" 가끔 다른 사람들의 차팅에 보면, 아무도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소리를 질렀다는 둥, 복도에 음식 담긴 쟁반을 패대기 치기를 두 번, 그야말로 패악질을 부리기도 했던데 나에게는 안그랬다. 난 그런 독소적 인간(toxic people) 상대해서 이겨본적은 처음이노라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했고 내 과거의 상처를 그로써 스스로 치유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근무 때, 밤 12시가 넘어 약을 가져다 주었을 때의 일이다. 그녀가 뭔가 말을 걸기 시작했는데 실로 너무나 오랜만이었던 데다가, 나는 이제 이겼고 이런 류의 사람들 너끈히 상대해 줄 수 있다고 자만해 빗장이 풀려있었나 보다. 그 틈을 비집고 은근슬쩍 열고 들어오는 통에 무장해제된 상태로 임전 수칙도 되새기지 못하고 그냥 적에게 점령당한채 장장 100분(!)을 그녀에게 붙들려 하소연을 들어주고야 말았다.


처음엔 예의 그 음식 불만부터 시작할때, 나는 여유만만하게 아직도 이 타령을 하고 있다고? 한심하군. 이제는 자기는 굶주리고 있노라고 발악을 하면서도 번호를 줘도 신고조차 못하면서 무슨..쯔쯧. 속으로 비웃음 반 놀려대는 기분 반 하면서 들었다. 점차 자기 살아온 이야기로 넘어갔다. 다섯살 때까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이야기, 열네살 때부터 일해야 했는데 돈은 구경도 못했다는 이야기. 시부모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이야기 등등. 이야기를 하면서 전에없이 표정이 좋아지길래 이런 인간도 별 수 없이 결국은 외로워서 저렇구나 쯔쯧. 이번엔 비웃음 아닌 연민도 반쯤은 느껴졌었다.


그 방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오늘밤은 내가 봐줬다, 하지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100분이라니 말도 안돼...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뭔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느낌이 확 왔다. 완전 참패였음을... 결국 그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방심한 틈을 타서 나를 덥석 문 것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노년까지 살아온 '선수'가 나같은 먹이감을 몰라볼 리가 없다. 나는 곧 심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외면적으로 카리스마 같은 것 없고(나의 컴플렉스!) 상냥하고 공감력이 높은 것을 결점이라 할 수는 없을터인데, 세상엔 '이상한' 사람들도 많고 그때마다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 몸을 사리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 노릇을 어찌할꼬. 36계 줄행랑이 방법이 되기는 할까 그것이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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