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2월 셋째 주 월요일은 언제나 휴일이다. 'family day'라는 간판을 달고 공식적으로 쉬는 월요일. 캐나다의 대부분의 공휴일은 주로 몇째 주 월요일로 정해져 있어서 그때를 빌미로 모든 휴일은 long weekend가 된다. 이 땅의 조상들이 처음 무슨무슨 날을 제정할 때 상당히 실리적인 사고가 바탕이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처럼 절대로 못 잊는 특정 날짜를 기리면 그 안에 서사가 담겨 뭔가 비장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련만.
캐나다에서 처음 이들의 휴일이 된 사유가 그저 '몇 월 몇째 주 월요일' 하길래 참으로 멋대가리도 없는 문화 같으니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주말이 지나고 어떤 해는 수요일, 어떤 해는 목요일이 걸려서 부스러기같이 그러느니 그러지 말고 주말 끝에 붙여서 확실하게 몰아주자는 전략이었을까. 암튼 4월 이스터 데이(부활절) 전 Good Friday와 크리스마스 빼고는 거의 월요일이다.
그중 2월에 들어있는 패밀리 데이. 이것을 '가족의 날'이라 옮기는 게 적당할는지 '가정의 날'이라 하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한국엔 가정의 날이 있던가 없던가 가물가물하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 해서 취지대로 사랑과 감사와 보은이 넘치는 대신 내 마음속 부담만 팍팍 넘쳐흘렀던 기억이 있을 뿐.
이런 '가족 날'에 딱히 뭐 해야 한다거나 어떠해야 한다는 거 없이 지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가족 날'엔 새삼스레 'sweet home'을 강화하는 그 무엇도 하지 말고 차라리 오히려 그냥 각자 서로에게 아무도 아닌 존재로 지내는 날이면 어떨까 하고.
엄마도, 아빠도, 아내도, 남편도, 아이도 아닌 채 하루 살기. 계급장 떼고 타이틀 떼고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가 없으면 역할이 없고, 역할이 없으면 요구가 없고 요구가 없으면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체를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family'를 말하니 언젠가 동네 서점에 갔을 때 서가 기둥에 붙어있던 문구가 떠오른다.
행복한 가정들(의 행복한 사연)은 모두 엇비슷하다. 각각의 불행한 가정은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대신) 불행한 가정들 안에는 남다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톨스토이에게 사과를 담아...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중 흔하게 많이 인용되곤 하는 첫 문장에 덧붙인 재치 있는 유머로 인해 그날 나는 매우 유쾌해졌었다.
2020년 family day를 맞아 나 개인을 넘어 감히 염원해 본다.
happy family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쪼들리거나 환자가 있어 근심이 있거나, 구성원중 웬수가 하나 있거나 서로가 웬수이거나, 보기 드물게 3대가 함께 살거나, 달랑 한 사람이 살거나, 엄마만 있거나 아빠만 있거나,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가 살거나, 여자와 여자가 혹은 남자와 남자가 커플이거나, 등등등 모든 형태의 가정 안에 작으나마 나름의 행복할 거리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