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발굴하는 언론 기사 더 더 유감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가 티비밖 현실에서 또 일어났다. 내가 평소에 유감이던 할로윈 관련해서.
나는 할로윈 자체에 유감이 있을 리는 없고 다만 한국땅에서 그것이 들먹여지는 일에 대해 유감이 많던 사람이다.
내가 한국에 살던 10년 전엔 '할로윈'이 먼나라 이야기였던 것 같다. 들어는 본 것도 같고...뭐 이정도? 뭐 그런게 있는듯? 정도에서 우리는 그딴거 없이도 '글로벌 스탠더드'로부터 너무 고립되지는 않은 가운데 적절히 전통이란 것도 있어서, 말하자면 나름 고유한 문화성을 가졌었다고 본다. 말하자면 할로윈까지 기웃대지 않아도 아쉽지 않게 살아간다 이거였다.
나의 할로윈에 대한 첫 인상은 동네에서 본 한 꼬마에서 시작됐다.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는 상가 건물에서였는데 몇 층엔가에 있던 영어학원에서 내려온 아이였다. 다른 코스튬은 없이 마법의 빗자루같은 것을 하나 들고 잔뜩 어색한 표정과 몸짓으로 상가 입구에 엉거주춤 서성이던 아이. 영어학원에서 10월 마지막 날 할로윈 행사를 한답시고 애들을 내보냈나 보았다. 당시엔 초등생의 영어학원이나 유아들이 다니는 영어학원에서 미국 문화를 배운답시고 도입했지만 바깥세상은 그와 무관했으니 소위 분위기 조성이 안돼 있었던 것.
그들이 나가서 돌아다니며 생뚱맞게 'trick or treat'을 외칠텐가, 배운 영어로 용기내어 외쳐봤자 사탕 한 알 돌아오는 호응이 있을텐가. 그 아이의 곤혹스러운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그 아이는 커서도 할로윈이 어린 시절의 재미난 추억보단 난감했던 기억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당시 나는 그 아이가 어찌나 짠했던지. 학원 내부는 그럴듯하게 치장을 해놓았겠지만 전혀 다른 바깥세상에 아이들을 마구 내모는건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훗날 캐나다에 와서 할로윈 때마다 한국땅에서만큼은 할로윈이 계속 무관하기를 바랬다. 앞서 말했듯이 굳이 할로윈까지 기웃대지 않으면서도 '시크'한 진정한 문화강국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데 서서히 이태원 등지에서나 호텔같은 데에서 할로윈이 들먹여 지는 것을 멀리 미디어를 통해 접하면서 퍽이나 꺼림칙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는 나를 보면서 아이고 나도 참 어지간히 까칠하다 싶어 이제는 할 수 없다고 마음을 막 고쳐먹던 차에 '2022년판 세상에 이런 일이'가 터져버린 거다.
'참사'라 불리는 그 사고가 나고 이곳 캐나다 라디오 뉴스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나왔드랬다. '사우스 코리아' 이태원 사고 소식에 이어진 뉴스는 인도의 디왈리 축제 현장에서 사람이 몰려 다리가 무너져 거기도 백 몇 명 죽었다는 소식. 그런 유형의 사고 뉴스는 그쪽 동네 단골 아니었던가. 우리는 그 후진국스러움에 혀를 차며 바라보지 않았던가.
내가 개인적으로 유감이어 하던 할로윈으로 인해 그런 사고가 났다고 해서 희생자들에게 역정낼 일은 아니고또 탓을 돌리는 마음은 절대 아니다. 아울러 인과를 적용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무엇으로 인한 것이든 상관없이 사람이 모여드는 계기가 있을 땐 당연히 안전이 필수로 지켜져야 하는 일이며 그것이 업무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할로윈을 기어이 즐겨야만 하겠다는 이들에 대해 유감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들이 좋아서 한 일이잖아' 하며 나몰라라 한다면 그런 일을 하라고 둔 행정당국에 대한 유감도 만만치 않을터.
자 이번엔 세 번째 유감을 살펴볼까. 무슨 사고가 나면 언론은 왜그리 사연을 발굴하려 애쓰는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엄마 아빠중 한 명이 생일이어서 착한 딸이 식당을 예약해주고 낳아서 키워주셔서 감사하다 남긴 문자가 마지막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수학을 잘해 친구들 가르쳐주느라고 자기 공부를 못할 정도로 정말 착한 아이였다, 엄마에게 의지가 되는 아들이었다, 아빠에게 간을 이식해줄만큼 착한 딸이 그리됐으니 어찌 살라느냐며 제 걱정하는 아빠이야기 등등. 서울시 교육감이란 사람은 엄마와 중학생 딸이 함께 이태원에 갔다가 모두 변을 당한 모습을 보고 엄마와 딸이 얼마나 친하면 이태원에 함께 갔겠냐고 말했단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건가. 참 한가하신 말씀을 하고 계신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 많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엎어지고 포개져서 숨이 끊어져 나갔다는 사실이지 않은가!
공부를 잘하거나 인사성이 밝고 심성이 착하고 가족에게 힘을 주는 존재였기 때문에가 아니라 누가 됐든 사람이 그렇게 죽지 않아도 되도록 제도적으로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핵심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개개의 사연을 감성적으로 늘어놓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놈의 '지못미' 소리는 그만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