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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Nov 02. 2022

아, 대한민국

같은 제목 다른 노래 

나는 사회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있어선 안되는 일이 일어나면 정태춘이 부른 노래 '아, 대한민국'(1996년 발표)이 떠오른다. 얼핏 보기에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없이 풍요로와 보이는 요즘 새삼스레 아프고 어두운 일면을 보게될 때면 더욱.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 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 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 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일부러 유투브에서 찾아 듣고는 이어 같은 제목의 다른 노래를 찾아 듣는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1983년 발표). 모든 음반에 의무적으로 끼워 팔게 돼있는 소위 '건전가요'이던 노래가 이례적으로 방방곡곡 어디에나 울려퍼지는 히트곡이 됐던 노래. 국가권력이 주도하여 범국민 '국뽕 호르몬' 분비 촉진제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했던 노래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드는 산과들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끝없이펼쳐지는 곳

도시엔 우뚝솟은 빌딩들 농촌엔 기름진 논과밭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

도시는 농촌으로 향하고 농촌은 도시로 이어져
우리의 모든 꿈은 끝없이 세계로 뻗어가는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위의 정태춘의 곡은 마음을 무겁게 해서 차라리 눈을 돌리고 귀를 막고 싶은 기분이 드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래 정수라의 노래말을 음미해보면 극과 극에 가 있는 그 동화속 세상에 헛헛한 웃음마저 나온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같은 제목, 다른 두 노래를 각기 듣고 나면 이후 하루종일 입밖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다. 그것도 주로 후렴부분으로. 멜로디가 흥겨워서일텐데 무심코 흥얼거리다보면 현실과 괴리가 너무 커서 울컥 서글픔이 밀려온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 40년 전에 젊은 세대들은 그 노래에 추임새처럼 붙여불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돈 있으면 돈 있으면'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 '빽 있으면 빽 있으면'... 자조적인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서글픔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며칠 전 뜻하지 않게 명을 달리한 젊은 그들도 원하는 것, 뜻하는 것에 대해 그런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떠도는 말이야 'x포세대'니 '이생망'이니 하여도 한편으로 즐기고 싶은 것 많은 것도 젊음의 특권이 아닐까. 


엄청난 인파때문에 사고위험속에 있는 시민이 경찰에 전화해 현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말대로 'crowd management'를 요청했을 때는 경찰이 그런 일을 해주리라 믿어서였을 것이다. 40년 전엔 경찰에 그런 요청을 감히 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세상은 바뀌어서 노래말대로 '우뚝솟은 빌딩들'이 예사로운 곳에서 경찰에 신고를 해도 속수무책으로 사람이 깔려죽는 일이 일어나다니. '은혜로운 이 땅'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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