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다

술 못마셔서 슬픈 짐승, 술을 끊고 운다네

by 대륙의 변방

있잖아, 나 아무래도 술을 끊어야할까봐.

난 사실 술을 못마시는 사람이야. 그런데 나름 즐기기도 하는 사람이지. 못마시는데 즐긴다? 그럼 술만 들어가면 심한 주사로 옆사람 붙잡고 한 얘기 또하고 한 얘기 또하느냐고? 혹시 술에 취하면 우는 스타일이냐고? 아니면 토사곽란에 인사불성이 되어서 꼭 누군가에 엎혀서 자리를 뜨는 유형이냐고? 이상 민폐파라고 하자고. 그다음은 음주후 본인 스스로 심하게 부대끼는 증상을 경험하느냐고? 한마디로 노야. 앞에 열거한 것들 중 나에게 해당하는 건 하나도 없어. 술을 못마시는데 즐기기는 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아주 소량의 알코올로 즐길만한 상태에 도달한다는 이야기지. 어찌보면 아주 경제적인 음주행태라고나 할까.


사실 소싯적에 난 술에 관해서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었어. 어이가 없다고? 술좀 못마신다고 무슨 열등감씩이나 갖냐고? 우리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잖아. 어디서나, 누구와든 술이 안빠지는 사회 말이야. '술은 는다'는 믿지못할 속설을 굳게 믿고 나의 핸디캡(?)을 극복해보려 애썼다니까. 나는 술이 한방울만 들어가도 얼굴이 너무너무 빨개지는 체질이거든. 사실 그게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서 그런거라매? 그런데도 무모한 나는 젊음하나로 열심히 노오력해서 술 잘마시는 뇨자로 거듭나려고 했었어. 아, 참 치기도 그런 치기가 없네.


예전 20세기 대학생들은 웬 술에 원수가 졌었는가 커피보다 술이었지아마. 술자리마다 술 잘 마시는 후배는 눈에 띄었고 선배들은 이들을 인정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모습을 보였잖느냐고. 참내 이제보니 그것또한 인정욕구였구나! 술 잘 마셔 사랑받고 싶었어요...? 아, 부끄러운 과거사다 증말. 어쨌거나 끝내 술로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한 과거는 흘러갔고 그럼 왜 지금 술을 끊기로 했냐고?


예전의 소주, 막걸리, 맥주가 아닌 중년의 여인이 되어서는 와인을 마셔왔거든. 와인맛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늘씬하니 잘 빠진 술병과 패키지가 예쁘니까 고르는 그런 문외한이지. 끽해야 한 잔 밖에 더 마시지도 못해요. 지난 주말 저녁, 다같이 함께 영화를 보는데 아이들이 그러겠지? 한국에서 지하철에서 술취한 아저씨들한테서 나는 냄새가 난다는거야. 순간 시각은 물론 후각까지 지원되는 영상이 선명하게 떠올랐어. 때는 늦은 밤, 장소는 지하철 몇호선, 느슨한 옷매무새에 단단히 서있지도 못하는 아저씨들의 방만한 자태 있잖아 왜. 술냄새에 섞여 담배냄새나 때로 안주까지 짐작케 하는 범벅된 냄새를 풍기시던 그분들의 간은 건재하실까나. 암튼.


녀석들의 원성에 결심한거야. 네일아트 돋보이는 가늘고 긴 손가락에 투명한 와인잔 든 우아한 사모님 아니잖아. 얼굴은 벌겋지 낯선 술취한 아저씨 향기가 나는 중년여인의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아, 나 이제 안한다 안해, 술에 대한 짝사랑 이제 그만한다, 암만해도 난 안되는갑다! 하면서. 조금만 마셔도 술냄새가 진동하는건 뭔가 몸에서 되게 안받는거 아닐까 싶어서.


그런데 말이지. 지난 금요일부터 해서 주말에 내사랑 한국영화를 몇 편 봤거든. '강변호텔', '가장 보통의 연애', 그리고 '프랑스여자'. 세 편 모두 참 술 마시는 장면이 많더만. 금주, 아니 절주를 선언한 참에 왜 그리 술마시는 장면이 많을까 유독 눈에 들어오더만. 그리고 의아했어. 그게 우리의 삶이어서이리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언제나 술이 안빠지는. 술과 더불어 마음을 나누는. 거기에서 친분이 생긴다고 믿는. 그러니까 지금도 술 권하는 사회. 술 나누는 사회. 나는 그저 알코올로 느슨해진 사람들틈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운명, 아.

술 못마셔서 슬픈 짐승은 술을 끊고 운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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