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해 내가 시작한 작은 변화
이전 글에서도 많이 언급했듯, 나는 예민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예민하다고 하면 흔히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성격이 날카롭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가진 예민함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나의 예민함은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상황에 대한 대처가 빠르며, 내 자극에는 무디고, 변화에는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데서 드러난다.
이러한 성향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장점으로 보일 때가 많다. 눈치껏 행동하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며,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일도 나서서 하곤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로 인해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밖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돌아오기 때문에,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힘을 쏟기보다 지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도 무심코 짜증 섞인 말투가 나올 때면,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밖에서는 절대 하지 못하는 표현을 어떻게 내 아이에게 이렇게 쉽게 내뱉을 수 있지?’ 하고 스스로를 책망한다. 이런 감정을 1~2년 전부터 느껴오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우선 회사에서 내 에너지의 절반 이상은 쓰지 않기로 했다. 돌이켜보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곳은 회사였다. 그래서 처음 선택한 방법은 결국 회피였다. 바로 육아휴직.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곳에서 잠시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나와 가족을 돌보고, 다시 돌아갔을 때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단단해지려 애썼다.
다시 돌아간 회사에서는 아주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예전에는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힘들어 보이는 사람을 위해 먼저 나서곤 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나를 찾기 전까지는 애써 모른 척하려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여전히 보였고, 들렸고, 느껴졌다. 하지만 모른 척해야 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설득했다. 그 결과 맡은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퇴근 후에는 회사 일을 회사에 두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일이 너무 바쁠 때, ‘이건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객관적으로는 혼자 해내기 어렵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해야 마땅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혼자 해결하려 했다. 야근을 하면 아이를 볼 수 없으니 근무시간 안에 모든 일을 끝내기 위해 더 몰두했고, 그 결과 다시 녹초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10여 년 넘게 여러 회사에서 늘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 결과 모든 스트레스를 나 혼자 떠안았고, 결국 그 힘듦이 가족들에게까지 전해졌다.”
나는 이 생각을 반복하며, 용기를 내어 조금씩 바꿔보기로 했다. 도와달라고도 해보고, 힘들다고도 말해보고, 안 된다고도 표현해 보았다. 그러자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 주고 도와주었으며, 오히려 “너무 무리하지 마라”는 말까지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나에게는 이런 표현들이 쉽지 않다. 때로는 오히려 그런 말들을 꺼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내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나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를 이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