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이 내게 남긴 것들
첫 번째 회사에서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지내던 중, 한 가지 큰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 회사가 어느 중견기업에게 합병이 된다는 소식이었다. 그 무렵, 나는 연구소에서 신규 솔루션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과장 한 명에 주니어 개발자 네 명.. 고작 다섯 명의 인원으로 우린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회사의 미래에 보탬이 되고자 불철주야 노력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은 힘듦보다 기대감으로 가득 찬 나날이었다. 그러나 회사가 합병되고 새로운 인력들이 충원되면서 우리의 프로젝트는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그렇게 막을 내렸다. 참 허무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프로젝트가 드롭되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했음에도 그런 상황을 처음 겪은 우리는 생각보다 큰 타격을 받아 회사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던 것 같다.
그렇게 난 지금보단 더 큰 세상으로 도약할 준비를 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신입사원으로 쓰는 자소서가 아니기에 경력직 자소서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내가 어떤 업무를 진행해 봤고 어떤 기술을 습득했으며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어필할 수 있는 나만의 무기가 필요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력서를 고쳐 쓰고 강점을 찾아내기 위해 나 자신을 깊이 돌아봤다. 당시만 하더라도 요즘 IT 개발자의 취업 과정에 필수로 있는 코딩 테스트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난 자소서가 어느 정도 완성된 이후부터는 면접 준비에 몰두했다. 기초적인 이론에 취약했던 나는 수십, 수백 가지의 면접 질문을 무식하리만큼 외우고 또 외웠다.
그때의 나는 내가 해보고 싶은 영역의 사업을 하는 회사인지, 또는 일할 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회사 일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내가 아는 회사인가? 부모님이 아실만한 회사인가?라는 생각으로 네임밸류만 보고 무작정 지원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참 다행스럽게 자소서가 한 번만에 통과하였고, 1차 면접과 2차 면접 모두 끝나고 나오면서 소위말하는 '망했다'를 연발한 것 치고는 감사하게도 최종 합격까지 이뤄낼 수 있었다. 나중에 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인데 그때 채용이 굉장히 급했던 상황이었다며.. 사실은 내가 면접을 잘 본건 아니었지만 주어진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이 있어 보였다고 당시의 팀장님이 이야기해 주셨다. 역시 이직은 타이밍과 운이 따라야 가능한 것도 같다. 물론 내 능력이 우월하다면 그런 것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 말이다.
첫 이직 후 새로운 환경에서의 변화를 기대했지만, 역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가게 된 회사여서일까? 사업의 영역이 달랐을 뿐, 결국 일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입사하자마자 여러 이슈로 야근하고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고 그 회사에서도 힘든 점들이 있어 2년여 시간 이후에 또 퇴사를 하게 되었지만(이 이야기는 나중에 글로 또 남겨 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이직을 후회한 적은 없다. 새로운 환경을 찾아 도전하는 삶, 그리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경험들은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