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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태어났다, 엄마로

엄마가 되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by mingdu


정말 신기한 날이었다. 18년도 추석을 시댁과 친정 식구들과 잘 보내고 난 뒤, 갑작스러운 엄마의 문자.

"이제 복덩이도 찾아와 주면 좋겠네~"라고 말씀하신 며칠 후.. 새벽에 잠이 도통 안 오고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혔다가 불현듯 임신테스트기가 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테스트기 결과 두 줄이 떠있었다. 바로 다음 날 남편과 산부인과에 가서 받은 임신 판정. 나는 그렇게 예비 엄마가 되었다.




임신 초기는 행복과 불안함이 한 번에 왔던 시기였다.

젊은 나이에 갖게 된 아이라 내 주변에는 엄마인 친구가 딱 한 명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조심해야 할 임신 초기를 누구보다 요란하고 떠들썩하게 주변에 알리고, 그때 당시 정말 핫했던 HOT 콘서트까지 다녀왔다. 지금의 나라면 겁이 나서 하지 않을 행동을 아무런 걱정 없이 했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던 시기에 임신을 했던 상황이라 전혀 힘들이지 않고 집에서 내가 하고 싶은 취미 생활을 하고 먹고 싶은 걸 먹다 보니 스트레스도 없고 그 흔한 입덧마저 나는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돌아갈 자리가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나의 이름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공포감이 가끔 나를 옥죄어 왔다. 혹시나 임신 초기인 내가 일할 자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취업 사이트도 계속 들락날락해 보고, 공부를 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책도 읽고 컴퓨터를 켜서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깔아보기도 했다. 이런 내가 많이 불안해 보였는지, 남편은 옆에서 항상 든든한 말들을 많이 해주었고 나 또한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래.. 지금 내가 신경 쓸 것은 온전히 나와 나의 아이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렸다.




임신 중반에는 하루하루가 정말 바빴다.

확실히 초기보단 몸 자체는 무거워졌지만 몸 상태와 정신 건강은 더 나아진 기분이었다.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했는데 임신하고 회사도 안 가니 집에만 있던 내가 열심히 밖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경도 많이 했다. 집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인 해리포터 시리즈를 전편 쉬지 않고 읽기도 하고, 못 봤던 드라마와 예능을 몰아보기도 했다. 나름 태교의 일환으로 컬러링북, 뜨개질, 클래식 듣기 등도 해보았지만 성향상 길게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엔 밥과 고기가 정말 안 먹고 싶었다. 오직 딸기, 꽈배기, 그리고 호떡.. 집 주변에 호떡을 파는 곳이 없어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그 소식을 듣고 형부가 멀리 시장에서 호떡을 사다주시기도 했었다.

임신 중기에 가장 핫한 정밀초음파 검사와 임당 검사도 걱정과는 달리 큰 문제없이 잘 지나갔다.




마냥 행복했던 중반을 지나 임신 후기 때는 생각도 하지 않던 출산 준비를 갑자기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이와 함께 살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이사 준비와 새로운 가전, 가구도 사들이고 이사 후에는 집 정리를 하느라 한두 달이 속절없이 지나가버렸다. 미루고 미루던 아기 물품도 사러 다녀야 했다. 사실 뭐가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는 예비 엄마이기 때문에 정보를 많이 습득해야 했지만 그런 것에 워낙 젬병인 나로서는 정말로 꼭 있어야 한다는 물건들만 샀다. 몸은 확실히 달라졌다. 딸 아이라 그런지 배가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확실히 후반부에는 숨을 쉴 때 크게 내쉬어야 편했고 화장실도 자주 가야만 했다. 태동은 또 얼마나 심하던지 "아무래도 나를 닮아 활발한 아이가 나오려나 봐!!"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그러다 보니 숙면을 취하기엔 힘든 육체가 되었다. 수시로 잠에서 깨고, 수많은 꿈을 꾸고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곧 만나게 될 아이와 어떻게 인사를 나눌지 늘 상상하고 기대했다.





38주 4일이 되던 날,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첫째는 출산 예정일보다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말에 정말 끝까지 미루던 조리원 짐 싸기를 전 날 겨우 마무리하고 남편과 결혼식을 다녀왔다.

밤에 잠이 오질 않아 출산 관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찾아보던 중, 갑자기 양수가 터지는 사례에 대해 보게 되었는데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면서 많은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몇 분 뒤... 아까 사례에서 본 것만 같은 일이 내 배에서 일어났다. 배 안 어딘가에서 뚝! 하는 느낌과 함께 뭔가 실이 끊어지는 기분이 나서 급하게 화장실로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정말 갑작스럽게 양수가 터졌다. 한 번 잠이 들면 세상모르고 자는 남편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깨우고 여러 차례 여성용품을 사용한 후에야 짐가방을 들고 남편과 산부인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바로 입원해서 제모, 관장 등을 진행하고 유도분만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새벽이 지나고 담당 선생님께서 아기를 받아주시기를 기원하며 잠시 잠을 청했다. 진통이 점점 다가옴을 느끼며 아침이 밝아왔다. 생각보다 진통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생리통이 워낙 심해서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는 걸까...? 그래도 자궁이 많이 열리기 시작했다며 만약 무통주사를 맞는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씀 주셔서 무통 주사를 맞고 다시 조금 잠을 청해봤다. 아침 8시... 슬슬 진통이 많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궁도 어느 정도 열릴 만큼 열렸다고 슬슬 아기를 낳을 준비를 하자고 하셨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이제는 정말 아이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만실로 들어가 간호사 분들께서 힘주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여러 번 하자마자 너무 잘한다고 하셨는데.. 문제는 아이가 힘 몇 번에 나올 것 같았는지 간호사님이 "힘주는 거 잠시 멈출게요! 선생님 안 오셨어요!"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힘을 안주는 게 나에겐 더 곤욕이었고 그때가 내 분만 시간 중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시자마자 참았던 힘을 한 번에 주었고, 두어 번 만에 나의 아기는 미끄럼틀을 타는 느낌으로 슝! 하고 내려와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의사 선생님이 회음부열상주사를 놓기로 되어 있었지만 놓을 시간이 없어서 진행도 하지 못한 채 분만을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아이와 첫인사를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의 임신과 출산 이야기는 그렇게 다이내믹 하지도,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한 준비 과정은 누구에게도 쉽거나 힘들지 않은 일이 될 순 없다.

다만 아프고 힘든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온 예비 산모 또는 신혼부부들에게 임신과 출산 과정이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전하고 싶다.

아이를 갖고 지켜내고 큰 세상을 보게 해주는 것만큼 행복하고 찬란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길은 나 또한 새로이 태어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느낀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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