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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Aug 10. 2020

인생 최대 몸무게로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나의 축제고 내가 주인이다

여성은 사회에서 예쁜 얼굴과 몸을 강요받는다. 나 또한 그렇다. 인간이면 누구나 원하는 사랑받고, 관심받고자 하는 욕망은 예쁜 얼굴과 몸을 가진 여자에게 유리하다. 나 또한 20대 때 한창 그 상자에 갇혀 지냈다. 서른이 지나고 나의 내면에 관심을 돌리면서, 나의 얼굴과 몸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졌다. (관대해졌다는 뜻이지 다 놓아버렸다는 뜻은 아니다) 스트레스를 덜 받기로 나 자신과 약속하면서, 다이어트는 하지 않게 됐다. 대신 최대 몸무게를 정해 놓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그 최대 몸무게는 조금 넉넉하게 잡았다. 웬만하면 넘지 않게.




그렇게 내 얼굴과 몸을 전보다 훨씬 사랑하게 된 내가, 요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결혼식을 3주 앞둔 지금, 나는 넉넉하게 잡아두었던 그 몸무게를 한창 넘어, 인생 최대 몸무게를 매일 경신 중이다. 처음에는 놀라다, 그다음에는 어느 정도 적응하는 듯하더니, 요 며칠 다시 스트레스가 나를 덮쳤다.


왠지 지금 이 상황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평생 하루. 여자가 제일 예뻐 보이고 싶어 하는 결혼식 날. 나는 평생 경험하지 못한 나의 최대 몸을 이끌고 드레스를 입게 생겼다. 그래, 나는 지금 임신을 했고, 먹덧이 (전보다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되는 입덧의 한 종류) 있고, 나의 결혼식보다 뱃속 아기가 중요하다고 매일 나에게 세뇌해보지만, 오늘 나는 보고야 말았다. 적나라한 내 모습을. 스타벅스에서 남편이 무심코 찍은 사진 한 장이 며칠 동안 내가 외면해왔던 나의 지금 몸을 직면하게 만들었다. 쪘구나, 많이…. 확실히 보았으니, 괜찮다는 말이 이제는 스스로에게 먹히지 않을 것 같았다.



남편을 반강제로 볼링장으로 보내고, 혼자 조용히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감정 노트를 적어보았다. 내 머릿속 모든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본다. 



“결혼식이 3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제 진짜 코 앞인데, 이렇게 찌다니…
정말 화가 난다. 정말 이렇게 살이 찔 수 있다니..
평생 1번, 하루! 예쁜 드레스 입는 날인데….

 내가 내 몸을 잘 안 보니 실감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진을 보니 정말 딱 보였다. 살이 많이 쪘구나. 찌긴 쪘구나 정말.

지금 내 상황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왜 하필 지금….”



그리고 이 모든 생각 속에 감춰진 뿌리. 나의 인식을 들여다본다. 2가지 인식이 이 모든 생각의 배경에 있었다.


첫째, 나는 결혼식 때 날씬해 보여야 한다.
나는 결혼식 날, 내 평생 모습 중 가장 날씬해야 한다


둘째, 사람들은 나를, 내 외모를 평가할 것이다.


내가 없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외모와 내 몸을 얘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날 무조건 예쁘고 날씬해 보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이 인식을 뒤집어 본다. (이 부분이 감정 노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사우나를 하고 나올 때의 시원함을 선물해준다.)


사람들이 내 얼굴과 내 몸을 평가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알 수 없다. 나는 그날 무조건 예쁘고 날씬해 보일 필요가 없다. 그건 그들의 평가, 나에 대한 ‘그들의 평가’다. 나의 것이 아니며, 나의 가치와 별 상관이 없다. 아니, 나의 가치와 무관하다.



왜 소중한 그 날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나의 주인으로 만들려 하지?

나의 축제고,
내가 주인이다.

평생 하루인 그 날,
다른 사람 시선의 노예가 되지 말고,
나의 시선으로 충만하게 즐기자. 나의 결혼식이다.

역시 오늘도 어김없이 시원하다. 나는 다운될 때면, 이렇게 감정 노트를 쓴다. 생각을 토해내고, 그 생각의 뿌리를 찾고, 뿌리를 완전히 뒤집는다. 꽤 오랜 시간, 이 습관은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명상’처럼 내 생각을 바라보고, 그 생각의 사슬을 끊게 해 주었다.




어느 날, 화장실 세면대를 청소하다 생각했다. ‘매일 닦아도 매일 더러워지는 이 세면대. 참 지겹구먼.’ 그러다 며칠 뒤에 생각이 뒤집혔다. ‘매일 더러워지는 덕분에 이렇게 매일 청소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구나!’


내 마음도 그렇다. 가끔 이렇게 더러워지는 덕분에, 감정 노트의 시원함을 맛본다. 결혼식까지 남은 3주. 충만히 식을 즐기는 나를 상상하고 느끼며, 세상 최고로 즐겁게 지내야겠다. 평생 하루. 다시 오지 않을 나의 결혼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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