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냄새처럼 촌스럽고 구수한..
독서한답시고 들고 온 책을 무심코 넘기다 은행잎 한 장이 나왔다. 노란 은행잎 속에 아버지가 웃고 계셨다. 어머니께 안부전화 한 통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얼른 전화를 드렸다. 은행잎을 들고 이쪽 저쪽 살펴보는데 문득 은행하니까 떠오르는 아버지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니 이번에도 여섯 살 때였던 것 같다. 또래 친구들이 무슨 랜드, 무슨 월드와 같은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놀 때, 나는 서대문 적십자 병원 7층 에서 휠체어를 타고 놀았다. 당시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두 다리 모두 심하게 골절상을 입고 입원하셨다. 어머니께서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계셨기에 나는 어머니 병실 근처에서 있다가 어머니께서 '민찬아' 하고 부르면 얼른 달려가 어머니 이불 속으로 조심스럽게 소변기를 넣어드려야 했다.
어버지께서는 직장생활을 하시며 어머니 병간호를 하셨다. 아버지는 날마다 집에 가셔서 뼈에 좋다는 사골국물을 끓여 가지고 오셨다. 누군가 소금간을 하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말을 했는지 어머니는 허연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간기가 전혀 없는 사골국물을 힘겹게 들이키시곤 하셨는데, 아버지는 옆에서 어머니가 사골국물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얼른 사탕을 꺼내 어머니의 입에 넣어주시곤 하셨다. 어머니께서 사골국물을 마실 때면 나는 꼭 어머니 옆에 있었는데, 이는 아버지의 기도에 동참을 하기 위함이였지 사탕을 한 알 얻어먹어볼까 하는 생각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어디서 은행 열매가 뼈에 좋다는 말을 듣고 오신것 같았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여느 때처럼 사골국물을 건내시며 조만간 요 병원 앞에 있는 은행나무를 터실 작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오백 원을 달라고 했을 때 안된다는 말 대신 아랫입술을 꽉 깨무시며 '콱'하는 비언어적인 표현을 사용 하시곤 했는데, 아버지가 은행을 터시겠다고 말씀 하셨던 바로 그때 아버지를 보시고 '콱'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위험한 것도 위험한 것이지만 창피하니 제발 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미 창 밖에 줄지어 서있는 은행나무 가로수 어딘가에 걸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잔소리를 하고있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앞 침대에 계신 온몸에 갑옷같은 의료도구를 입고 계신 할머니에게 가서 은행을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복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묻고 계셨다.
다음날 아버지는 옆 침대 환자누나의 보호자인 새신랑 아저씨랑 은행털기를 감행하셨다. 난 어머니 옆에서 아버지가 은행나무에 올라가 온 몸으로 은행을 터시는 모습을 보았다. 온 병실 사람들은 구경이 났다며 창문에 바짝 달라붙어 은행이 후둑후둑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고 어머니는 얼굴이 빨게진 채 돌아누워 창 밖을 쳐다보지 못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은행 털이 사건으로 무료했던 병실 안에 갑자기 어떤 활력이 돌았었던 것 같다.
얼마 후 아버지와 총각 아저씨는 마치 나홀로 집에 나오는 두 도둑처럼 커다란 부대자루 가득 은행을 가져오셨다. 하지만 병원 내에 퍼진 은행냄새의 진원을 찾아다니던 수간호사에게 들켜 심하게 꾸중을 들으시고는 결국 집으로 쫓겨나다시피 돌아가셔야 했다.
어머니는 막 볶아진 은행을 처음 가져오신 아버지를 보시고는 어서 빨리 가까이 와 보라고 하셨다. 나는 직감적으로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지만 아마도 아버지는 모르셨던 것 같다. 순진하신 아버지는 헤벌쭉 웃으시며 더 더 가까이라는 말에 어머니 얼굴 앞으로 얼굴을 들이미셨고 어머니는 놓칠세라 아버지의 볼을 사정없이 꼬집으시며 '못난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뽀뽀라도 해주실 줄 알았나보다.
아버지는 엄청난 양의 볶은 은행을 병원 사람들에게 나눠주셨는데, 그 뒤로 한 동안 사람들의 입에 초록색 은행 알맹이가 오물거릴 때면 공처가 아버지의 은행털이 이야기가 나왔고 병실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유독 어머니만 창피해서 어쩔줄 몰라하셨는데 나는 바로 그 아버지 아들이라는 이유 덕분에 유명인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어깨가 으쓱했다.
어머니 몸을 생각하셨던 아버지는 정작 아버지 당신의 몸은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 독한 은행을 왜 맨 손으로 주우셨는지 온 몸에 옻이 올라 피가 나도록 박박 긁으시며 한 동안 고생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어머니를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혼인 서약서의 맹세를 온 몸으로 은행을 털어가며 지키셨다. 남들은 뭐라 그럴지 모르지만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어깨가 으쓱하다.
그나저나 오늘 책읽기는 은행잎 때문에 내일로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