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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May 05. 2020

미국 남자와 연애는 처음이라 ep.32

마지막 편



헤어졌습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라고!?' 하실 여러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렇게 되었어요.


정말 아쉽지만


헤어졌어요.



예상치 못한 작은 일이 불씨가 되어 거침없이 크게 번져 헤어지고 말았어요.


요즘 사랑하는 가족 중 한 분을 떠나보내고, 사랑하던 민익씨도 떠났고, 제가 준비하던 일들도 영 속도가 나지 않아 생애 가장 낮은 지점 어딘가를 설설 기어 다니고 있어요. 우울의 바다에 푹 빠져 절어있는 미역같이 지낸 지 약 2주가 지나 3주 차가 되어갑니다.


사실 지난 스토리도 헤어지고 나서 적은 것이랍니다.


써 내려가면서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지만,

그래도 갑자기 사라진 유령 연애 스토리의 작가로 남고 싶지 않았어요.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한 이야기를 담고 싶지만, 그건 스스로에게나 민익씨에게 도의가 아닌 듯해서, 간단히 제가 이번 연애를 통해 느낀 점들을 적어보고, 아쉽지만 자칭 '미남연' 연애 스토리는 여기서 그만 접어야 할 것 같아요.


처음 민익씨와의 러브스토리를 적게 된 계기는,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사람만 있을 뿐이다.'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이별 역시 국경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그저 제가 겪은 이별 중 하나처럼 비슷한 주제였어요. 그래서 여전히 국제연애도 같은 연애라는 입장은 변함이 없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애도의 과정은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라는 총 5단계가 있다고 해요.


저는 2주 전부터 저 다섯 가지 감정을 골고루 느끼며 하루는 책상을 내려치며 그에게 분노하고 하루는 '그럴 수도 있다'이해하며, 그때가 좋았지 웃음 짓고 슬픈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서른다섯의 여자가 겪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열심히 타고 있습니다.



이번 연애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부끄럽지만 저는 어릴 때 사랑을 믿지 못하는 여자였거든요.

자주 다투시던 부모님을 보고 자라며 독신주의를 외치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갈까 봐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통보를 해 버리기도 하는 아주 불안정하고 불안한 애정관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러다 그런 변덕스럽고 못돼 처먹은 저의 연애를 '진정으로 모두 이해하고 받아주는' 부처님 같은 남자 친구를 만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 사람이 나에게 준 그 감정이구나...'라고 느끼고 이번에 민익씨와 연애를 하면서 그 친구가 저에게 줬던 사랑을 이번에는 내가 주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연애를 했어요.



그리고 브런치는 그런 저의 결심에 힘을 실어주었어요.


그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을 때, 사소한 다툼이 생길 것 같을 때, 괜스레 서운해서 그가 미워질 때, 혹은 너무 좋아서 기복이 심해질 때 등 여러 상황에서 차분히 글을 써 내려가며 저의 감정, 그리고 그와 있었던 일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자칫하면 큰 싸움이 될 수 있었던 일들을 이해하고 넘어가 보기도 하고, 추후 기록할 때 부끄러운 기억이 되지 않도록, 저에게 떳떳하고 아름다운 연애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돌아보면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참다 참다 못 참고 감정이 폭발해서 민익씨를 당황시킨 적도 있고,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니 떨어져 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그의 단점들을 지적하기도 했고,

반대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커져서 그에게 아쉬움을 토로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완벽한가요.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아껴주고 사랑해주면서 서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지원해주는 것이 진정한 연애라고 생각하는걸요.


민익씨도 저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 서로 아무리 맞춰보려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건가 봅니다.



저희 예쁘게 사랑하길 바라고, 행복한 결말을 바라 주시고, 항상 응원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제 글을 좋아해 주시고, 답글 남겨주시고, 사랑스럽게 지켜봐 주시던 분들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저희의 좋은 결말을 은근히 기대했는데, 이렇게 되니 아쉽기도 하네요.


2주 동안은 정말 '미칠 것처럼' 힘들었는데, 이제는 조금 그의 빈자리에 저의 원래 모습을 채워나가고 있어요. 원래 알고 지내던 분이 타이밍 좋게 바다 보러 가자고 해서, 내일은 바다도 보러 가요! ㅎㅎ 


걱정해주시고 안쓰럽게 생각해주신다면 감사해요.

그래도 원래 혼자서 가다가 한 사람이 더해졌듯이, 다시 혼자서 갈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민익씨를 만나기 전에 저는 혼자였고, 부처 같은 남자 친구를 만나기 전에도 저는 혼자였는데,

20대 때와는 다르게 30대 중반에 다시 혼자가 되는 기분은 사뭇 다르게 느껴지긴 하더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전미경 선생님이 지으신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이더라도, 그래도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라는 말을 되내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연애가 끝났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혼자 지낸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고 해서 성공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연애가 끝난 이 시점에서는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지만,

그래도 저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경험을 통해 조금은 더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었고,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정직하게 조금은 더 안정감 있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저에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대학생 때 한없이 독립적이어서 혼자서도 잘 다니고, 사막 한가운데 떨어뜨려놔도 잘 살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치던 한비야를 좋아하던 소녀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 되었어요. 스스로를 '연애 중독자'라고 일컬으며, 사랑 이야기를 쓰며 한없이 행복해하는 여성이 되었죠.


이제는 다시 혼자서 두 발로 사뿐히 서서 걸어보는 연습을 해보려 합니다.


여유가 생긴 주말에는

춤 배우기

운동하기

노래(보컬) 배우기

봉사활동

여행(코로나가 잠잠해지면 ㅠㅠ)

미술관 가기

'온전히 내 취향의' 영화와 드라마 보기

를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에요.


저는 연애를 하면 상대에게 맞추려 노력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당분간 저를 위해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요.


처음 글을 적어 내려 갈 때보다 기분이 한결 나아요.

역시 브런치는 저에게 힐링인가 봐요.


저의 소소한 로맨스가 여러분들에게도 작은 힐링이 되었길 바라봅니다.


저만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만끽하고 나면

다음에는 어느 국적의 사람과 연애담을 적어볼지 고민을 해볼게요.

댓글로 의견도 받아요.


... 농담입니다.


앞으로는 저와의 연애담을 좀 적어볼까 해요.



아무쪼록 이런 소식을 가지고 오게 되어서, 저도 씁쓸하지만. 이해해주시리라 믿어요.

다시 한번 응원해주시고 예쁘게 봐주시고 즐겁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이 가득하시고,


모두 예쁜 사랑 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아주 아주 큰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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