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졌어요 ep. 1 전 남친과의 재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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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지 않던 찰나에
나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곧바로 민익씨와 헤어졌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불러오는 요인들 중 하나라고 한다.
약한 정도의 폐소 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한동안 창문이 없는 곳에 가면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응급실 찾듯 정신과를 찾았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가벼운 정도의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았고, 약은 이틀치 이상 먹지 않고도 호전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가만히 잘 들어주시고, 마지막 즈음에 (피와 살을 넘어서) 뼈가 되는 한 마디씩을 건네주시는 분이었다.
선생님을 만난 건 고작 4-5번에 불과하지만, 난 아직도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줄 누군가가 거기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는다.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시면서 경과를 지켜봐요.”
부드럽게 웃으며 말씀하시는 얼굴 뒤로 후광이 났다.
나도 전문의 같은 지식은 없지만 내가 아는 지식들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익씨와 헤어지고 한 달쯤 뒤에 첫 수업을 개시했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일주일 중 단 하루 월요일을 쉬는 날로 정했지만 그 하루는 유난히 예약문의가 많았다.
결론적으로 7월부터 오늘까지 나는 거의 하루도 편히 발 뻗고 쉬지 않았다.
처음에는 쉬면 우울해질 것 같아서 일을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혹시나 혼자서도 잘 살려면 커리어나 금전적인 부분들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하면 할수록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이따금씩 나를 돌보지 않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나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버림받지 않고 싶은 욕구와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두 가지 욕구가 모두 강하고 완벽주의도 있다.
수강생분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도록
일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완벽하게
더 완벽하게
더
더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끔 나를 짓누른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내 삶을 주도하며 비로소 주인공이 된 듯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흰머리도 인생 최다 개수를 갱신하고 있는 걸 보면 꽤 무거운 압박감인 듯하다.
그럴 때마다 거울 앞에 통곡하던 나를 떠올린다.
거울 앞에 선 나에게 함부로 대해서 미안하다고 한바탕 통곡을 한 다음날부터 나는 거짓말처럼 세상 두려울 게 없었다.
인생 마지막 날까지 함께 있어줄 좋은 친구, 나와 잘 지내보고 싶어 졌다.
통근길에는 수많은 심리 도서를 포함한 책을 읽고, 내게 있는 정서적 결핍을 이해하고, 내 연애 패턴의 문제점이나 앞으로 고려할 점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뛰고 걷고 걷다 지치면 앉아 쉬면서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어나더 레벨로 터득하고 있다.
‘우린 그냥 안 맞았구나!’
어느 날 유레카와 같은 계시가 내렸다.
그리고 어느 하루는 민익씨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전 남자 친구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 시점은 내가 이별을 극복하는 시점과도 같다.
그 순간 익숙한 이름을 한 카톡 메시지가 내 휴대폰 화면을 두드렸다.
도민익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뒤로하고 메시지 창을 열었다.
“이번 주말에 같이 식사할래?”
내가 헤어진 다음날 그토록 기다리던 말을 5개월 만에 듣는다. 그런데 오늘은 금요일이다. 이번 주말이면 내일이나 내일모레다. 그에게 웬만하면 모든 것을 맞춰주고, 주말마다 보려고 최선을 다하며, 그와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하려던 일도 뒤로 미루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나 내일은 바빠. 일요일에 잠깐 시간이 날 수도 있는데 상황 봐서 알려줄게.”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다.
저 레스토랑에서 민익씨를 만나기로 했다.
저 안에 민익씨가 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을 부여잡고 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고 있는데 잊혔던 익숙한 얼굴이 나를 부른다.
제기랄, 심호흡하는 모습을 들켰다.
신경을 쓰고 싶지도 않고, 신경 쓴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후드티에 청바지, 운동화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왔는데
쿨한 전여친 코스프레가 위태로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