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에 살면서 이전에는 상상치 못한 기상천외 해프닝 & 뉴욕 집값
지난 주말, 갑자기 천장에서 물이 흐르더니 점점 물줄기가 강해지고 급기야 천장이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집 천장이 떨어지는 건 태어나서 들은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던 일이라 그야말로 대환장파티였다. 떨어진 천장을 잘 살펴보니 오피스를 개조해서 만든 집이라 오피스 천장이 스티로폼 같은 자재를 압축해 만든 보드 같은 것으로 되어있어 물을 먹으면 무거워져서 찢어지면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사는 룸메이트도 공포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예상대로면 집주인(미국에서는 'Landlord, 랜드로드'라고 불러요)이 얼른 와서 고쳐주면 좋겠지만, 그분은 캐나다로 여행을 떠났고 고쳐줄 사람이 당장 없는 상황이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약 이틀 밤 동안 차오르는 여덟 개의 양동이들을 몇 시간마다 비워줘야 하는 임무가 생겼고, 월요일이 되어서야 위층도 아니고 윗 위층의 파이프가 문제였음을 밝히고 한바탕 물난리가 마무리되었다.
미국 사람들은 건물을 허무는 것에 알러지가 있는 것 같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려고 하면 사람들이 모여서 결사반대 시위를 하기도 할 정도로 그 알러지는 무시무시하다. 그래서인지 귀찮아서인지 내 시점에서 보기에 특히 뉴요커들은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보다 기존의 건물을 유지 보수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절대 허물지 않고 오래된 건물도 자꾸자꾸 보수해서 심지어 전쟁 전에 지어진 건물을 Pre-war 건물이라고 소개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오래된 집에서 사는, 특히 맨해튼의 임대자들은 집에서 다양한 문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 같은 상황에서 임대를 한 사람('Tenant, 테넌트'라고 부릅니다)은 어떻게 대처해야 했을까?
1. 첫 째도 증거, 둘 째도 증거!!
테넌트가 제 때 렌트비를 내고 집을 잘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반면, 랜드로드는 해충, 자연재해, 기타 다양한 피해로부터 테넌트가 안전하게 생활할 공간을 보장해 줄 의무가 있다. 이는 기본적인 안전함 뿐 아니라 조명과 같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해줘야 하는 의무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에 살면서 지속적으로 불편한 문제가 있을 때는 사진을 많이 찍어두어야 한다. 시간대별로 날짜별로 증거를 무수히 모아 내가 얼마다 불편하게 지냈는지 남겨야 한다. 또한 랜드로드에게 편지 형식으로 요청문을 작성하여 지속적으로 알려야 하고, 알렸다는 증거도 남긴다. 구두로만 전한 경우 나중에 자기는 전혀 몰랐다고 발뺌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속이 타들어감을 각오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웬만한 생사가 달려있지 않은 경우엔 매우 느긋하다. 그리고 손님이고 뭐고 그냥 다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손님이 왕 노릇 하며 갑질을 했다가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화병으로 먼저 쓰러질 수 있다. 우리 집 같은 경우에도 물이 새는 곳이 어디인지 여기저기서 초대된 플럼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다 금요일 3시가 되니 오늘은 일찍 퇴근해야 한다고 다들 집에 가버렸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당연히 주말이라 그들은 일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워터파크 속에서 양동이를 비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내 생사가 불안할 정도로 악화된 경우 연락할 수 있는 곳은 311.
집과 관련해 뉴욕시 차원에서 테넌트의 민원을 넣을 수 있는 번호이다. 그들은 민원이 들어오면 상황을 판단해 가장 가벼운 레벨 A부터 가장 심각한 레벨 C 까지 정도를 매겨 그에 따라 랜드로드에게 시정할 것을 요구한다. 오랫동안 랜드로드에게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는 경우, 혹은 나처럼 연락할 방법이 없지만 당장 해결이 필요한 경우 이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그들의 역할은 당장에 문제를 해결해주기 보다는, 랜드로드에게 시정을 요청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집처럼 물이 새서 311에 연락한 테넌트가 인터넷에 올린 이야기들 중 하나는, 그들이 오자마자 집 천장을 싸그리 뜯어버려서 랜드로드가 고쳐줄 수밖에 없이 만들었다고 한다. 랜드로드가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 다 뚫린 천장 아래서 그 사람이 어떻게 지냈을지는 의문이다.
3. 마지막 비장의 카드, 고소미(SUE)
고소의 나라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미국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고소를 많이 한다. 특히 집에 관해서는 따로 담당하는 법원에 케이스를 접수하면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변호사를 고용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경우는 법원에서 청원이 접수된 후 청원자의 집을 검사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테넌트와 랜드로드의 인간적인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집 계약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이 살던 집을 나와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그래서 이 방법은 더 이상 어떤 수를 써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을 때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써야 한다. 또한 다음달 렌트를 내지않고 버티는 방법도 있는데 이것은 반대로 랜드로드가 테넌트를 고소할 수 있고, 이 기록은 다음에 테넌트가 다른 집 계약을 할 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
4. 맨해튼 대략적인 집 값 비교
쥐구멍에 살아도 서울이 좋다고 생각하는 나는 천장이 무너져도 맨해튼을 떠날 수가 없다. 그래서 알아본 맨해튼의 집값 평균을 간단히 알려드리고 오늘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참고로 이 곳에서는 사람이 거실에 살기도 한다! 나도 거실에 산다. 뉴욕의 말도 안 되는 집세는 2베드룸에 세 명이 살면서 렌트비를 나눠서 내는 일을 가능케 한다. 또한 부동산 중개인인 브로커 비(Broker Fee, 대체로 일년치 렌트비의 15%정도)가 추가될 수 있고 맨해튼 중에서도 어느 지역인지, 아파트가 얼마나 레노베이션 되어있는지 등에 따라 조금씩 가격이 달라질 수 있기에 참고용으로만 알아두시기를.
한 달 렌트 기준 $
맨해튼 스튜디오 - $2000대
1 베드룸에 화장실 하나 - $2000대 중반에서 후반
2 베드룸에 화장실 하나에서 두 개 - $3000대 중반에서 후반
3 베드룸에 화장실 두 개 - $5000에서 $6000대
다만 미국인이 아닌 학생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 크레딧 스코어라고 불리는 신용점수 및 소셜 넘버라고 불리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집세를 안 내고 도망가도 추적할 방법이 없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6개월 혹은 1년 치를 한꺼번에 내야 들어갈 수 있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어려운 경우 일 년 치 집값의 약 30배 정도가 통장에 들어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보증인(Garantor, 개런터)이 있으면 계약이 가능할 수 있다.
어려운 타향살이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이번 환장파티는 내 미국 생활을 레벨업시켜준 좋은(?) 기회였다. 같은 일을 겪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집에 관련된 문제가 생긴 경우 이 글을 참고하시기를 바라봅니다.
Jenn
; 옷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큰 꿈을 가지고 느지막이 패션에 뛰어든 겁 없고 명랑한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