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졌어요 ep.4
어쩌면 이 번호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통화연결음이 내 귓가를 울린다.
Hello?
눈물이 쏟아져 나올 줄 알았는데, 놀라우리만치 담담하다.
익숙한 목소리다.
민익씨다.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던 전 남친이다.
“안녕. 어제 이야기한 거 생각해봤어.”
“오케이.”
그의 모든 움직임과 음성은 나에게 사랑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는 관찰 대상이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만큼 도가 텄다.
민익씨가 이야기하다
“엄...” 하고 시간을 끌고 있으면
연애한 지 2년 차가 넘어갈 쯤에는 그의 말할 수고를 덜어준 적도 꽤 많다.
보통은 그 이상의 시간이 흘러야 숨소리만 들어도 상대의 기분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그를 향한 관찰이 지나쳤거나, 민익씨의 생각이 단순하거나, (아주 높은 확률로) 둘 다 이거나 일 것이다.
“생각해 봤는데... 안 될 것 같아.
나는 널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가타부타한 부연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왔다. 무슨 말을 하든 네 탓 혹은 내 탓을 하게 된다. 길게 말하면 구차하다 느꼈다.
결론은
더 이상 내가 너의 단점을 감당할 만큼
너를 사랑하지 않아.
인데.
예전에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핑계들을 늘어놓으며 신파극을 찍기도 했다.
여전히 짧은 말로 끝맺음을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 통화에서만큼은 깔끔하게 말했다.
수화기 너머 그의 흐르는 눈물 자욱이 느껴진다.
민익씨의 큰 눈망울에서 소리 없이 눈물이 줄줄 흐를 때가 있다. 내가 민익씨와 헤어질 뻔한 적이 여태 두 번 있었는데, 그는 그때마다 많이 울었다고 했다.
“미안해.”
다시 마음이 찢어진다.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곁에 있을 때 내 마음을 조각조각 냈을 때는 언제고,
이별 후에 인스타그램에서 그토록 해맑고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줄 땐 언제고,
(결국 괴로워서 언팔을 하고 말았다. 나중에 만났을 때 자길 언팔 했냐길래 다시 팔로우하긴 했지만.)
이제 와서 울며 다시 붙잡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이별을 결심하게 된 그의 단점들이
이제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언젠간 달라지겠지
언젠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언젠가는..
언젠가는...
기대가 커질수록 실망도 커졌고,
사랑에 올인하던 나의 과거는,
민익씨와 비슷한 분위기의 사람을 피하도록 만드는 PTSD를 안겨줬다.
“너를 아직도 사랑해.
하지만 우린 너무 달라.
미안해.”
길게 말하면 구차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심이 나와버렸다. 그에게 희망고문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진심인걸.
“나도 사랑해.”
그렇게 우리의 5개월 만의 통화가 끝났다.
아직도 미련곰탱이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