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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Mar 29. 2021

헤어진 민익씨를 다시 만나다

우리 헤어졌어요 ep.3




Honey




민익씨가 나를 부른다.



민익씨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그가 한국말로는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나: 누나.

민익: 누나?

나: 응.

민익: 그게 무슨 뜻이야? 네 이름이 아니잖아.

나: 한국에서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사람을 그렇게 불러.

민익: 뭐? 그냥 honey로 부를래.


으잉?

‘누난 내 여자니까’의 미국 버전인가.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이것이 바로 심쿵인가.



미국에서는 연인 간에 babe, honey를 많이 사용한다. 보통은 결혼한 커플들이 honey를 많이 사용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결혼하기 전 ‘자기야’라고 부르는 것을 babe, baby

결혼 후 여보나 자기는 ‘honey’라고 보면 될 것 같다.


HONEY


우리가 각자 서로의 이름보다 더 많이 불러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호칭이다.


민익씨가 나를 혹은 내가 민익씨를

“허니”

하고 부르면 우리는 한결같이


“예스, 허니?”

하고 답하곤 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지금은 우리가 헤어졌다는 점이다.


내 마음을 심쿵하게 흔들던 당돌한 남자가 내 앞에서 울상을 짓고 앉아있다.


나는 필사적으로 “예스, 허니?”라고 답하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감정을 배제한 채, 쌀쌀맞게 답한다.


도민익

(미국에서는 보통 도미닉을 줄여서 돔이라고 불러요. 한국어로 적으니 물고기 같고 그러네요.)



우리는 서로를 부르는 호칭만큼이나 머릿속도, 감정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우두커니 내 앞에 앉아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여태 살면서 느껴 본 온갖 종류보다 더 많은 감정들이 솟구친다.


사랑

미움

애정

분노

반가움

섭섭함

미안함

배신감

슬픔

고마움

아픔

안타까움

서러움

...


적어도 적어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감정의 목록만큼 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5개월 만에 그를 다시 만나고 헤어지던 날,

우리는 가벼운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는 구멍 난 헌 운동화를 신고, 나와 함께 산 새 운동화를 든 채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에 찬 그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쳤다.


나는 그가 다시 만나자고 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본 후 다음 날 전화하겠다는 말을 건넸다.






사실 나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해진 운동화 같았다.

우리의 관계, 내가 민익씨를 바라보는 마음, 내 마음이 모두 구멍 난 운동화로 보였다.


나는 관계 속에서 그의 사랑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나에게 믿음을 주는데 끝내 실패했고, 나는 낮은 자존감의 대가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비굴함을 느꼈다.


서운함이 커졌다.


잘해주고 나서 서운하다며 우는 나의 패턴이 반복되면서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지쳤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열심히 공들인 남자와의 인연이 이렇게나 허무하게 끝나는 경험을 직면하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겪고 싶지도 않은 고통이기 때문에 우리의 재회는 내 생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선택지였다.



그가 만나자고 한 날에도 나는 그의 얼굴에 시원하게 물을 한 바가지 들이붓고 뺨을 때린 후에,


5개월 동안 실컷 놀고 돌아오니 속이 후련하냐

그래, 나만큼 잘해주는 여자가 없지

이제 와서 연락하면 내가 받아줄 줄 알았냐


퍼부어 대는 상상을 했다.


헤어지던 날에도 내 머릿속에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미국군, 민익씨는 독일군이었다.


시작을 알리는 총성은커녕 시작도 못하고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였지만 말이다.






차라리 내가 덜 잘해줬으면 우리가 지금처럼 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잘해줬어야 하는데.
아무리 남자 친구가 좋아도 나를 먼저 챙겼어야 하는데.
좀 더 여우같이 사랑할 걸, 내가 왜 그랬을까?


헤어지고 나는 계속 나를 책망했다.

책망은 후회를 부르고, 후회는 깊은 우울의 바다로 나를 끌어내린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중에 ‘아는 변호사’라는 분이,

우울증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했다.


체인지 그라운드의 한 강연에서 어떤 작가분은, 호흡곤란을 부르는 무시무시한 공황발작이라는 현상은, 내가 무엇인가를 내 마음대로 컨트롤하려고 할 때 심해진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한없이 깊은 심연 속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정신없이 읽었던 어느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쓴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많은 매체가, 요소가, 사람이, 인연이 나를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끝에는 물론 환하게 다시 내 손을 잡아주는 내가 있었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

현재 만족스러운 상황에 처해있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핸드폰을 들어 그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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