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goes on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암 중에서 가장 지독한 암이라는 췌장암이었다.
수술을 할 수 있는 불행 중 다행인 케이스였다.
대수술을 받은 할머니는 회복하지 못하고 나날이 약해지셨고, 암의 존재를 알게 된 지 약 8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삶이란 것이, 목숨이란 것이 그렇게 보잘것없이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똑똑히 두 눈으로 목격했다.
할머니 댁이라고 불렀던 곳이 할아버지 댁으로 바뀌었다.
할머니는 남의 일에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은 분이라 나에게도 전화를 많이 거셨다.
귀찮아서 종종 안 받던 ‘할머니’라고 적혀있던 전화는 더 이상 못 받게 되었다.
할머니 없이 보내는 명절이 어색할 줄 알았는데, 적응이 된다.
엄마가 시댁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돼서 좋고,
음식 솜씨가 좋은 할머니 덕분에 명절마다 절제하지 못하고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것만 같은 것도 싫었다.
억지로 참여하던 제사도 미사도 안 지내도 되어서 좋았다.
명절 중 하루는 2년 만에 조조 영화를 보러 나갔고, 친구를 만나 텅 비어 보이는 서울을 떠돌아다녔다.
그 와중에도 유명한 음식점 카페는 사람이 꽉 차서 들어갈 수 없었다.
최근 나의 목표와 한계에 대해 절감하는 중이다.
나는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는 목표보다 추상적이고 의미 있는 것에 마음이 먼저 따르고 몸을 맞춰서 움직이는데, 요즘은 그 대단한 의미의 돛을 잃고 정처 없이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은 일들은 작은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애초에 먹었던 다짐과 용기가 쉽게 부서졌고
정신 차려보면 ‘힘들다’는 투정과 ‘번아웃’을 달고 살았다.
(그놈의 번아웃…! 하는 것도 없는데 다 잘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다)
겉은 번지르르하고 속은 비어있는 느낌
이 공허감은 어릴 적부터 내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의욕이 넘치고 긍정적인 겉모습과 함께 아주 연약해서 쉽게 부서지며 화가 많은,
너무도 지극히 평범해서 무엇 하나 하는데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내적 평화가 누군가에 의해 흩어지는 것이 싫어서 외롭지만 차라리 외로운 게 나은,
지겹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짧은 산책에서 만난 예쁜 풍경, 강아지 한 마리, 좋은 노래 한 마디에 감동받아 인생은 아름답다 이러고 있는,
때때로 좀 가혹하긴 하나 자기 객관화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정확한 목적지가 없어 불안하지만 한편으론 그 또한 인생의 묘미라 느끼는,
할머니가 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사시기를 바라지도 않는,
이 모든 것이 그냥 나이고 인생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 삶에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