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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Feb 19. 2022

노처녀가 시집 못 가는 몇 가지 이유

어쩌면 나만 그런 걸지도


나는 올해로 일곱살이다.


열일곱도


스물일곱도 아닌


서른일곱.

삼십칠짤.


요즘 결혼이 늦어졌다지만

1,2,3을 초반, 4,5,6을 중반, 7,8,9를 후반이라고 볼 때

지금쯤 노처녀 반열에 들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나에겐 결혼의 기회가 총 세 번 있었다.


첫 번째 상대는,

사실 아직도 가끔 생각나고 그리워하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서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

그 당시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고, 그는 셋 이상을 원했다.

나는 미국에 가서 패션 공부를 하고 싶어 했고, 그는 왜 나와 있고 싶지 않아 하냐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만약 내가 하던 선생님을 계속하면서 약사였던 그 사람과 결혼했다면, 나에게 펼쳐질 미래는 편안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너무 편한 미래가 보이는 와중에 우울증에 허덕이는 내가 함께 보였다.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결혼은 그렇게 무산되었고, 그는 자신과 잘 어울리는 연분을 만나 아기 낳고 잘 살고 있다.


두 번째는, 헤어진 후에 전화로 청혼한 케이스라 이것도 기회로 쳐야 할지 모르겠다. (…)


가장 최근인 세 번째는, 한 30일 정도 만났을까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디즈니 캐릭터 반지를 주며 청혼을 했다.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빵 터졌다가, 하도 진지하길래 아직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좀 더 만나고 생각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분노 발작을 했다. (아 그때 헤어졌어야 되는데)


어렵게 달래 가며 고비를 넘기고 더 만나봤지만 그는 결국 나에게 경찰까지 출동해야 했던 이별의 트라우마를 남기고 다른 가스라이팅 희생자를 만나 결혼해서(!) 살고 있다.


음, 그렇다.

결혼할 기회가 세 번 있었다고 뻐기기엔, 남자 보는 눈이 많이 부족했다.

연애를 하며 남자 보는 눈을 키우는 거라는데, 나는 쉽게 사랑에 빠지고 계속 비슷한 실수를 하며 같은 이별을 했다.


‘한 여자가 다섯 번째 이별을 하고~’

산속으로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는 가수의 노래가 떠오를 정도로 나의 연애는 다이나믹 했던 것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먹는 것인가?


허구한 날 일만 하고 맛있는 것 먹느라 정신없는 내가 보기 안쓰러웠는지 아빠가 맞선에 내보냈다.


“자. 이거 써.”


“엥? 이걸 어디다 쓰라고?”


20만 원이다.

왜 때문에 대체 이 많은 데이트 비용을 주시는 건가 깜짝 놀랐다.


“할머니도 아빠한테 선 나갈 때 돈 줬어.”


엄마한테 들어보니 밥도 안 사주고 커피만 마셨다던데, 나도 이거 가지고 옷이나 사 입어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내심 감동받아 코 끝이 찡했다.


상대는 아빠 직장 선배의 아들이다.


카톡 프사를 보니 기대가 하나도 안 되었다.

하지만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만나기로 했다.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에 깔깔 웃으며 폭풍 같은 리액션을 선보이고, 으로 돌아오는 길에 잔뜩 현타가 왔다.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성격도 가치관도 생각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을 하니,


자상하고

너그럽고

믿음직한 사람


이라는 내 이상형이 점점 더 확고해진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싶기 때문에, 나의 이상과 기대를 낮추지 않기로 다짐한다.


과거의 내가 상대방들에게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했을 때 ‘괜찮을 거야’라며 눈 감고 무시했던 부분들이 이제는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500배로 확대해서 보이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나는 어쩌면 영영 가정을 꾸리지 못할지도 모르는, 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30대 후반의 1인 가구의 가장이자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나에게 시간은 금이다.


만나는 동안 내 시간이 아깝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며 생애를 보내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강한 열망이 있지만,


마음이 척척 맞는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어서 행복하고,

가사나 육아보다 내 자아실현이 우선이고,

아이를 낳고 일을 못하면 우울증이 올 것 같고,

기왕이면 좋은 시댁 식구들을 만나고 싶고,

결혼을 안 하면 성숙하지 못하고 이기적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굳이 지금보다 이타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고민하는,


노처녀의 밤이 오늘도 깊어간다.


single ladies - beyonce 아니 근데 비욘세 언니도 결혼했쟈나.?!




간만에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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