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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Jul 07. 2022

나이는 죄가 없다

나이듦에 대한 고찰



“몇 살이세요?”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껄끄러웠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서른을 넘기면서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 서른일곱이요.”


죄지은 사람 마냥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후 이어지는 상대의 반응을 살피게 되는 것도 싫었다


“어려 보이시네요.”


친절한 분이 가끔 건네주는 말에


“감사합니다.”


라고 답변을 하는 것도 어느 순간 마뜩찮아졌다


가볍게 하는 칭찬인데 그냥 좋아하면 될 일이지 뭘 그렇게 복잡한가 싶기도 하지만,


감사하다고 답을 하는 순간


‘어린 건 감사한 일이고,
나이 드는 건 감사하지 않을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프로그래밍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 그 나이일 줄 알았어요’ 혹은 ‘생각보다 어리시네요’ 같은 반응도 썩 좋을 것 같지는 않다^^;;)


모두가 죽음(끔찍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이라는 곳으로 향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개념으로 봤을 때

어리다는 건 비교적 건강한 것이고, 건강한 것은 좋은 것이고 감사할 일이다

앞으로 아프지 않고 살 날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한편 나이가 드는 것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줄어든다는 거니까 슬퍼할 일이다


그런데 과연,

삶은 좋은 것이고 죽음은 나쁜 것일까?

어린 건 좋은 거고 늙은 건 안 좋은 것일까?

건강한 건 좋은 거고 건강하지 않은 건 안 좋은 것일까?

꽃과 나비도 찬란한 삶을 살고 시들어 갈 때 슬퍼하고 서러워할까?


인간은 자신이 더 이상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내 추측으로는 생식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해서가 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본능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내게 죽음은 두렵긴 하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1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뜨겁게 활활 타는 솥 구덩이 지옥에 빠진 것처럼 분노, 우울, 공허감에 허덕이며 인생을 살아온 나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


나무의 나이테가 견뎌온 세월을 알려주듯,
내 얼굴에 있는 주름은 상대의 이야기에 깊게 공감하고 함께 고민하거나 즐겁게 웃었다는 표식이고,
드문드문 보이는 새치는 나의 앞날이나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관계를 고민한 흔적이고,
살짝 굽은 어깨는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 증거이고,
가뭇가뭇한 기미는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세계 각국을 누비며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다니던 훈장이다


일 년 중 가을을 가장 좋아하는 나는 낙엽을 유난히 좋아한다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도 로맨틱하고, 바스락바스락 내는 소리도 좋고, 태우는 냄새도 좋다

뉴욕의 가을이라는 영화보다 진짜 뉴욕의 가을은 그 어떤 명화보다 멋졌다

그런데 그 예쁜 낙엽이 나이 들었다고 슬퍼할 것을 생각하면 나까지 속상해진다


나는 먹은 나이만큼, 그보다 덜 혹은 더 성숙해졌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자랑스럽다.


그런데도 막상 몇 살인지 물어보는 질문 앞에서는 자꾸만 캄캄한 독방에 무기한 복역 중인 대역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목표를 두 가지 세웠는데,

그중 하나는

‘내 나이를 진심으로 당당하게 말하기’

이다.


나는 심각하게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세우면 늦더라도 마침내 이루고 마는 편이다


이것도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사십이 될지 오십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기


예전보다 조금은 여유롭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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