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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Sep 12. 2022

인스타그램을 싫어하는 인스타그래머

너무 괴로운 인스타그램!


나는 인스타그램을 싫어한다


내가 비즈니스 계정을 운영하지 않았다면 달랐을까?


개인 소장용으로 인스타를 하는 친구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마냥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찍어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즐겨야 하는데 인생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비교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괜찮다.


다만 눈코입은 큼직한데 머리와 얼굴은 소멸해가는 외계인 같은 얼굴이 가득하고,

인물을 주변으로 시공간이 뒤틀릴 만큼 15등신이 넘어가는 말도 안 되는 비율들을 보고 있으면 실소가 나온다.

직접 본인이 결과물을 보고서도 포스팅을 할 수가 있는 건가 싶은데도 #광고 가 잘만 붙는다

사진 밑에는 다들 알 텐데도 꾸준히 달리는 “너무 예뻐요. 비율이 예술이에요.”하는 댓글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지고,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현대의 문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건가? 싶은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필터 카메라 그대로 동영상을 찍으니까 특히 풍경을 찍을 때는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멀미인지 알 수 없는 구역질이 난다.

보정이 절대 없다고 적어놓기까지 하면서 보정한 사진과 지진이 난 동영상을 올리는 계정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보정을 해야만 사람들이 봐주고, 광고가 들어오는 거겠지?

제각기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매력이 있는데 왜 다들 천편일률적인 매드몬스터가 되어야 하는 걸까?

미적 감각이 뛰어나서일까?

자존감이 낮아서일까?

기술을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아는 똑똑한 문화인 걸까?

인스타그램의 얼굴과 몸매가 거짓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면 이후 계속 거짓된 얼굴과 몸매로 남아야 하는 것이 슬프거나 힘들지는 않을까?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가끔은 필터를 써서 셀카를 찍거나 색감 보정을 하는 내가 저 사람들이랑 다를 게 뭘까.


가만히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으면 모든 사람이 눈코입은 큼직한데 얼굴이 작아야 하고 날씬해야 하고 주름이 하나 없어야 하고 키가 크고 비율이 좋아야 한다는 그들의 무언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나는 더 즐거워야 하고 더 좋은 곳에 많이 가야 하고 돈이 많아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그것은 마치 본래의, 그리고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은 받아들여질 수 없고 고쳐야 한다고 소리 지르는 아비규환의 현장 같다.


이밖에도 공허한 마음을 달래며 무의미한 시간을 무한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돋보기 탭을 혐오하고

자세한 성분도 모르고 자신의 체질도 모르면서 다이어트를 위해 보조 식품을 섭취하는 것은 효과가 없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효소 광고도 싫다.

부업 계정

가짜 계정

사기 비트코인

매춘 광고 계정도 진절머리가 난다.


내가 사는 서울과 내 주변의 세상은 흡사 디지털 유비쿼터스 홀로코스트다.

지하철에 가도 버스를 타도 유튜브를 봐도 인스타그램을 켜도 티비를 봐도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언제 어디서나 무엇인가를 사야 하고 바꿔야 하고 고쳐야 하고 보완해야 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소리를 지른다.


사람들이 왜 귀농을 하는지 알 것 같다

그들도 나처럼 예민하겠지?

나는 명상, 요가원이나 상담센터를 차리거나, 바닷가 앞에 움막 하나 짓고 낮에는 서핑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상상을 문득문득 하며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이 정도로 인스타그램이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고, 도시가 싫으면 떠나면 되는데, 그러기엔 도시에서 내가 사랑하는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너무 많다. 게다가 슬프게도 인스타그램은 내가 하는 일을 홍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아이러니로 나는 그토록 혐오하는 인스타그램에 이따금씩 오래 머문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걸까?

그렇다면 이 매체들은 우리 사회의 필요일까, 악일까?

내가 하는 일들 또한 무언으로 누군가에게 바뀌어야 한다고 소리 지르고 있는 광고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선도 악도 없고,

최선도 최악도 없으며,

누구를 탓할 일도 없고,

내 탓도 아니다.

답은 없지만, 내 인생에서만큼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생각하는 게 답이 된다.


그래서 예민하고 불편한 나는 혼자 자세를 고쳐 앉으며 오늘도 인스타그램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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