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
전 남자 친구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우연히 나의 전 남자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한 친구는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며 그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봤다
나는 그와 헤어지자마자 팔로우를 끊었지만, 그의 인스타 아이디는 있는 그대로 그의 이름과 성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인스타 프로필 사진에는 흐린 기억 속에 사라져 가던 그와 어느 예쁘장한 여자가 볼을 맞대고 있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너무 기쁘고 좋을 때 나오는 웃음을 띄고 있었다
평생 나한테만 그렇게 웃어줄 줄 알았는데.
다시 만나거나 사귀거나 결혼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괜시리 마음이 저렸다
사실 다른 전 남자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표정으로 여자 친구 혹은 와이프의 곁에 있는 사진을 프로필로 해두었다
헤어짐이 취미였던 시절, 나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몇십 번이고 집 앞에 찾아와 끊임없이 나를 붙잡던 지고지순한 순정남도 나에게 보여주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어여쁜 와이프 곁에 있다
이 망할 놈의 소셜 네트워크는 간간히 나에게 전 남자 친구들의 와이프는 물론이고 자식, 부모, 친척들과 죄다 눈인사를 시켜주는 것이다
그냥 안 보면 그만이지만 그러기에 나는 미련이 많은가보다
내가 사랑을 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1. 그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구애하며 모든 것을 다 걸고 진덕진덕하게 군다
2.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혹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진다
3. 더 이상 지쳐서 버티지 못하고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는다
4. 쿨하게 헤어짐을 고한다
5. 내 머릿속에서 그를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분류에 미련 없이 던져 넣는다
헤어짐이 체질같던 내게 이별은 같은 절차를 반복하는, 그리 어렵지 않은 과정이었다
나를 무척 사랑해주는 좋은 사람을 만나도,
적당히 사랑하는 괜찮은 사람을 만나도,
마음에 못 미치는 사람과 적당히 좋아하기만 해도,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나는 헤어지고 나서가 더 행복하고, 그와 만날 때를 회상하면 천국 같았던 날들이 하나같이 지옥이 되었다
누구나 사랑하면 최악이 된다
최근 보고 싶었던 영화 제목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도 최악이 된다
나를 많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가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요구하면서 언제까지 나를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했고, 별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상처를 줬다.
미련 없이 헤어지기 장인이었지만 마지막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는 지독한 후유증을 겪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와 헤어짐을 슬퍼하기 보다는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랑에 대해 분개하였다
나는 사랑을 하면 나와 상대방을 혹사시킨다
한편 솔로일 때는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사람을 피한다
갈등과 분쟁을 꺼리고 무한한 평화를 즐기며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나를 이성적으로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만 빼고 말이다.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미국에 가기 전에 전 남자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
“나는 아마도 자기랑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결혼을 안 하지 않을까 싶어.”라고 말했다.
하도 정직해서 마음에 없는 소리를 절대 하지 않던 그는 자기도 그럴 거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이들이 나와 헤어졌다고 해서 평생 솔로로 살아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나 아닌 사람과 무척이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대인배까지는 못 되어도, 내 인생에 없었던 사람처럼 무심히 지낼 수는 있다
앞으로도 애써 무심하게 잘 지내기를 바란다
내가 던진 물음의 답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