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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Dec 17. 2018

미국을 떠나기로 했다.

내가 미국을 떠나기로 한 소소하고 중요한 몇 가지 이유들

1월 16일.


이민 가방 두 개와 내 몸통보다 큰 백팩을 메고 마지막으로 인천공항에서 한식을 먹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이 창백해진 남자친구와 잘 다녀오라고 토닥여주는 부모님과 함께 먹었던 밥은 메뉴가 무엇이었는지도 기억이 안날만큼 어색했다. 배웅해주는 그들을 뒤로하고 출국심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기분이 묘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설렘과,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아니,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혼자서 조용히 준비했던 유학이라 갑자기 얘기를 꺼낸 후 몇 달 동안 생난리를 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이기적인 꿈을 가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스스로를 탓했고 그래서 우울했다. 말리고 못가게 하는 가까운 사람들부터 친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은 언제하냐고 다짜고짜 묻는 오지랖도 지겨웠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인지 긴장을 해서인지 비행기에서 낑낑거리며 내렸을 때 장면도 기억이 안난다. 보스턴에 사시는 고모 할머니 댁으로 곧장 가서 며칠을 지내다 최근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신 고모 할아버지께서 보스턴에서 뉴욕까지 그 먼 길을 손수 운전으로 데려다주셨다.


그 후 3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그토록 원하던 학교의 디자인과를 졸업했고, 몇 군데에서 인턴을 했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전시회를 했고, 친구들을 사귀었고, 연애를 했고, 직장을 구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미국이 좋았다. 그냥 어릴 때부터 좋았던 것 같다. 왠지 미국 여자들은 독립적이고 자기 목소리를 좀 더 크게 낼 수 있어 보였고, 남의 눈을 그닥 신경쓰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곳인 것 같았고, 오히려 남들과 다른 부분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곳이라고 느껴졌다. 지나친 오지랖 없이 개인적인 공간을 보장해주는 인간 관계를 맺는 곳인 것 같았고, 우리나라에서 내가 그토록 집착했고(해야만 했고) 재미를 느꼈던 영어를 쓰는 곳이었고, 처음 만나자마자 나이부터 물어보지 않고 서열을 나이로 정하지 않는 곳이어서 좋았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H1B 추가보충서류를 제출하라는 편지를 이민국에서 받고, 제출을 했지만 떨어졌다. 변호사는 더 이상 방법이 없고, 다시 지원한다해도 같은 이유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예술가비자(O-1)나 영주권같은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예술가 비자는 워킹비자보다도 주관적이고 모험적인 도전이었고, 영주권을 받으려면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계속 머무르거나 학생비자를 신청해서 비슷한 다른 회사에서 불법으로 일을 해야 했다.

생각에 생각을 꼬리를 물고 결론에 다다르자 나는 어디에 살든 떳떳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불법으로 일을 하며 남아있고 싶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기에 후회도 없고, 미국에 대한 이미지가 지금은 달라진 점도 많아서, 어디살든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미련없이 떠날 수 있다.


나를 떠날 수 있게 만드는 점들, 그렇지만 내가 머물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1. 비자에 드는 비용과 생활비

비자나 영주권을 회사에서 지원해준다면 사정이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내가 전액을 부담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돈을 모으기가 어려웠다. 벌면서 조금씩 모은 돈은 족족 비자를 위한 비용에 들어가고, 게다가 이게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는 장기전임을 깨닫고나니 내가 이 곳에 살기 위해 희생하는 것들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걸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또한 뉴욕에서 내가 한 달에 버는 비용 중 렌트비와 식비, 쇼핑, 데이트 비용 등에 사용하고 나면 딱히 많이 남지도 않고, 아무리 알뜰살뜰 모아도 결국은 비자비용에 들어가니 결과적으로는 꽤 오랜 기간동안 제로 혹은 마이너스일 게임이라고 느껴졌다.


2. 외국인이라는 제한된 자격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회사에서 비자비용을 지원을 해 준다해도 영주권을 한 번 신청하고 나면 나올 때까지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영주권을 받기 원한다면 회사에 묶여 떠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되어야 한다. 만약 내 일이 마음에 들고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회사라면 가능하겠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는 나에게 그리 맞지 않았고, 내 인생의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시간을 영주권을 위해 이 회사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라면 그냥 직장을 옮기면 그만이지만, 외국인 신분으로 직장을 구하고 이직을 하는데는 정말 많은 제약이 있다. 그래서 서럽기도 했다.


2. 헛헛한 마음

가족이 없고 수시로 주변 사람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 불법적인 신분으로 일하며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보이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 미국 땅 내의 한국사회에서 생활하는 것은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 이상으로 답답하다. 가족 또한 멀리 있어 안정감이 없고 항상 붕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3.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

직장을 그만둘 때 고려해야 하는 세 가지가 돈, 사람, 일이라는 데 나는 세 가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절(Denied) 통보를 받고 바로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이 회사에 그만둔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 회사를 다니면서 말도 안되는 업무들을 맡으며 느낀 감정들,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던 왠지 모를 억울함과 서글픔, 분한 마음들이 온갖 소용돌이를 치며 변기통에서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회사 속 인간관계에서 지나치게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이렇게 그만두면 사실상 끝나는 인연인데 우리는 투철한 직업정신이라는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4. 언어

결국은 영어.

기본적 회화는 가능하지만 아직도 전문적인 용어나 빠른 플로우의 대화를 따라가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래도 내 전문 분야를 개척하는 일은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훨씬 어려워진다. 물론 하고자 하면 할 수 있겠지만 안 그래도 어려운데 굳이?


5. 병원, 미용실, 맛집

병원과 미용실은 너무나 비싸고, 맛집은 비싼데 맛이 없다. 한국의 음식이 없다고 못살 것 같지는 않지만, 막상 가게되니 가장 먼저 생각난다. 병원과 미용실도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즐거움.


6. 이 나라도 만만찮케 시끄럽다.

여성의 인권이 좀 더 보장되는 곳이라고? 물론 여성들의 목소리가 크긴 하다. 자신감있고 당당한 여성들이 주목받고, 다른 나라에 비해 여성의 인권 신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비교적 많이 쏠려있는 것 같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여성상들은 여느 나라들과 비할 수 없이 자극적이고, 지극히 남성주의적이며,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 또한 팽배해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남자들을 여자한테 인기 얻으려고 저런다고 비난하는 사회적인 여론도 공공연히 있다. 남성과 여성이 평균적으로 받는 봉급의 차이가 말도 안되게 크다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들이밀어도, 여성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무식하게 받아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아직도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일상적인 나라가 아닌가? 여성인권을 떠나서, 혐오나 증오로 인한 총기난사나 제정신으로는 믿기 어려운 온갖 범죄들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말이다. 일회용 제품 사용의 비율을 보면 환경보호를 세계에서 제일 신경 안쓰는 나라같다. 우리나라에서 일주일의 행사처럼하는 분리수거는 여기와서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자칭 세계 최고의 나라라는데, 내가 보기엔 아직 갈 길이 아주 멀다. 게다가 인종차별은 미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더 한 것 같기도 해서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가 않다.


아직도 미국이 좋다고 느껴지는 건 여기가 뉴욕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인데, 개인주의가 있다보니 남의 시선에 신경쓰거나 남에게 지나치게 참견하는 것을 예의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이부터 물어보지도 않고, 나이에 크게 신경쓰지도 않아서 나는 여기와서 내 나이를 대체로 잊고 살았다. 그런데 가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 지나치게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거나 너무 나이를 먹었다는 강박이나 슬픔같은 것이 느껴져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들도 주로 한국인들과 어울리다보니 마찬가지로 나이에 민감한 것을 보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끝도 없이 싸우며 이룩해 낸 자신들의 나라이다 보니 표현의 자유에 민감하다. 다시 돌아간다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혹은 개인적 제약들도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다. 참, 무참히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이 무색하게 미세먼지 걱정안해도 되는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날씨는 미국을 좋게 만드는 일등공신이었다.


결론은 그동안 꾸준히 느껴왔듯 어디사나 자기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다. 외국생활의 경험을 십분 살려, 주변의 흐름에 맞추며 자유롭게 나를 변형시키기 위해, 그리고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하기 위해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만 살았다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경험 또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보석들 중 하나가 될 거라 확신한다.


떠나는 날은 4월 중순에서 말 쯤일 것 같다. 떠날 때 모습은 올 때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내 마음 속에는 경험과 설렘, 도전정신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기념품들을 품에 안고 갈 예정이다. 한국에 가서 낙심할만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보물들을 간간히 꺼내보며 마음을 다잡고 헤쳐나갈 궁리를 해야지. 그 때까지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고 사랑하고 즐기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젠(Jenn)

경험하고 사랑하고 소통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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