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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May 10. 2019

그의 가족들을 만나다

미국 남자와 연애는 처음이라 ep.9


도미닉 더 로봇은 처음 만난 날처럼 한결같다.


늘 불같이 타오르는 연애를 했던 나로서는 처음 몇 개월 정도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와 정말 친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가끔가다 표현도 곧잘 해주는 스윗가이지만, 워낙 무표정하고 로봇 같은 말투의 이 남자는 도통 표현이 없었다. 답답하기도 하고 어쩔 땐 혼자 좋아하는 것 같아 서운하다. 만나면 기분이 좋다가도, 헤어지면 이건 뭔가 싶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사람 곁에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보긴 처음이다.


이제와 민익씨 성격을 파악하고 보니 그럴 것이 하나 없었다. 그저 잔잔한 강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를 탄 것 같다. 그는 맑고 잔잔한 사람이다. 존재감이 크지 않지만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아늑하다.


우리의 데이트도 그처럼 소소하다.


토요일 저녁에 느지막이 만나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내가 혹은 그가 찾아본 재밌어 보이는 곳에 놀러 간다. 딱히 기억에 남을 만큼 자극적이고 새롭지 않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왠지 편안하고 웃음이 배어 나오는 데이트들이다.


연애 초반 그와의 데이트에서 기억에 남는 건 그의 가족들을 만난 일이다. 한국에 있을 때 나에게 상대방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큰 의미였다. 그들을 만나는 순간 결혼이 전제가 되어 괜히 내가 밑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미루고 미뤘다. 한편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은 가족을 만나는 일이 대수롭지 않다. 너무 가볍게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면 별생각 없이 상대방을 가족에게 소개한다. 가족들 또한 사귀면 사귀는구나 축복하고 헤어지면 헤어졌구나 안타깝지만 그럴 수 있지 뭐 그런 식이다. 상대방을 잘 알려면 그의 부모와 가족을 만나보라는 이론 상 나는 미국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민익씨의 아버지와는 난데없이 만났다.

그날은 할로윈이었다. 할로윈은 미국에서 꽤 큰 행사다. 민익씨와 처음으로 함께 할로윈을 보내는 기념으로 우리는 커플 할로윈룩을 시도하기로 했다. 알라딘과 자스민, 포켓몬에 나오는 악당 커플 로켓단, 미키와 미니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하지만 우리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는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였다. 민익씨는 폰 배경화면도 조커다. 아직도 가끔 자동으로 그의 폰 화면이 켜지면 깜짝깜짝 놀란다. 처음에는 조커와 할리퀸을 할까 싶었지만, 나도 할리퀸보단 조커가 좋다. 여자 조커가 되기로 했다. 할로윈 커플룩에서 자웅동체 조커가 되었지만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여자 조커가 되기로 한 나는,

얼굴을 새하얗게 칠하고 눈은 시커멓게 아이라이너로 뒤덮고 입술은 새빨갛게 칠했다. 연두색 형광 가발을 썼고 몸에 꼭 붙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었다. 더 섹시한 여자 조커가 되기 위해 망사 느낌이 나는 브라까지 드레스 위에 착용했다. 민익씨도 코스튬 샵에서 산 조커 옷을 차려입고 가발을 썼다. 그에게도 조커 화장을 해줬다. 드디어 준비를 마치고 할로윈 거리행진이 열리는 곳으로 향하려고 하던 찰나에 그곳에서 대형차를 타고 폭주한 운전자가 사람들을 여럿 치어 다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테러인지 정신이상자의 소행인지는 나중에 드러났겠지만 차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열심히 꾸몄는데 아깝고 아쉽다. 그 사건을 아직 모르던 민익씨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가 할로윈 파티를 하고 있는데 오지 않겠냐고. 난 그렇게 괴상한 모습으로 그의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형광 가발을 쓴 채 눈은 퀭하고 입이 찢어진 분장을 한 아들의 여자 친구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의 고모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땡스 기빙(thanksgiving, 추수감사절)에 만났다. 민익씨 아버지의 차를 타고 그의 고모가 사는 업스테이트 뉴욕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모가 할 인터뷰를 준비하라는 민익씨 아버지의 말에 한껏 긴장했다. 무슨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할까 고민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다행히 그녀는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자, 자신이 뚱뚱해서 옷을 사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으셨다.  뚱뚱하다는 말에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 어렵게 입을 열었다.


that’s not true. you just have a good portion.


고모가 빵 터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한 말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고모는 나에게 더 이상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내가 맘에 든단다. 난 뭐가 잘못된지도 모른 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멍하니 앉아있다 돌아오는 길에서야 나의 큰 실수를 깨달았다.


porpotion(비율)이 좋다고 말해야 할 것을, portion(분량) 몸에 상당한 분량이 있을 뿐이라고 해버린 거다.


애꿎은 민익씨의 멱살을 잡고 난 어떡하면 좋냐고 망했다고 절규하며 이리저리 흔들었다.


처음 그의 어머니를 본 날은 하도 긴장을 해서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지고 따로 사신다. 미국에는 워낙 그런 가정이 많아 놀랍지도 않다. 형제가 셋이고 이복동생이 둘인데 친형제처럼 아주 잘 지낸다. 그녀의 전 남편인 민익씨의 아버지는 요즘도 그녀의 생일파티에 얼굴을 비춘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근황을 전하고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내게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하는 혼란이 찾아오는 풍경이다.


민익씨의 차를 민익씨의 동생과 함께 타고 그들 어머니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내가 그의 어머니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호칭을 고민하다 멘붕에 빠졌다. 그들은 별 도움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Ms. Gullin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mom이라고 할 수는 더욱 없다. 그냥 그녀를 부르지 않기로 했다.


예전에 민익씨가 그의 어머니에 관한 에피소드를 말해준 적이 있다. 한 때 그가 하도 연애를 하지 않자 하루는 어머니가 그를 조용히 불러 난 네가 게이여도 여전히 너를 이해하고 사랑하니 솔직하게 말해도 좋다고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고 한다. 오늘은 민익씨가 게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날이다. 내 존재 자체가 중요한 날이다. 인터뷰 준비는 많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의 어머님은 따뜻하다.

선생님인 그녀는 이혼 후 아들 셋을 혼자서 키웠다. 집에 도착한 우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도우려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하게 했다. 한국의 어머니들 같다. 그녀에겐 남자 친구가 있다. 본인의 남자 친구 얘기도 하고, 민익씨의 아버지인 전 남편 이야기도 하는데 인간미가 느껴졌다.


불편하지만 한국의 불편함이 아니고, 긴장되지만 한국의 긴장감과 다르다.


묘한 기분이 드는 와중에 그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왜 민익씨의 가족인지 알 것 같다. 이혼 가정이긴 하지만 두 분 모두 좋은 분들이다. 두 분은 성격이 강하다. 한쪽이 져줘야 하는데 져 줄 사람이 없다. 결혼을 해 본 적 없지만 결혼 생활이 어땠을지 대략 상상이 간다. 두 분 다 내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될 만한 부분이 없다. 그의 어머니는 오히려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녀의 손에 키워져서 다행이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강한 부모님 사이에서 어떻게 민익씨는 이렇게 희여 멀건 한 성격이 되었는지는 미스터리다.


서양에는 ‘너는 너, 나는 나’의 개념이 강하다.

아들이 자신이 아니고 자신이 아들이 아니다. 어느 정도 키웠고 딱히 걱정을 끼치는 자식이 아니라면 알아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 기본 마인드다. 간섭보다는 존중이 있고, 참견보다는 이해가 있다.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웬만해선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민익씨의 가족은 그랬다.


자신의 가족들이 나를 진심으로 환영해주자 민익씨는 틈만 나면 가족들 행사에 나를 데려가고 싶어 한다. 가족 행사가 많은 시기에는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뭘 이렇게 쫓아다니나 싶고, 피곤해서 그냥 둘이서만 보내고 싶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얼굴만 비추더라도 꼭꼭 참석하는 그의 형제들이 보기 좋았다. 그의 가족들 덕분에 머나먼 타지에서 명절이나 연휴를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미식가인 민익씨의 아버지는 한동안 한국과 일본을 구별하지 못하고(이런 사람이 꽤 많다.) 나와 대화거리를 찾기 위해 일본 음식 얘기만 했다. 아시아의 음식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민익씨와 만난 지 꽤 오래되었을 때, 한국 요리를 보여주겠다며 찜닭을 해서 갖다 줬다. 그는 한국 요리에 반해 가족들을 다 데리고 코리안 타운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어머니와는 서로의 남자 친구 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위로도 하고 서로 페이스북에 좋아요도 누르며 지낸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의 국적이, 언어가, 나이가, 살아온 방식이, 문화가, 사고방식이, 가정환경이, 정서가 다를 것 같아 걱정을 했다. 만나보니 확실히 모두 다르다. 하지만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남자 친구를 만들어 준 가족이다.






민익씨 형제들은 유전자가 좋아 잘생겼어요. 그들을 구경하러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민익씨는 아직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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